- 신부님 분노가 뭔가요?
성경 강의를 끝내고 나서 성경 강의의 유일한 남성 참석자 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 좋은 분노가 있고 나쁜 분노가 있나요?
- 음… 분노라는 것은 하나의 감정이지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았을 때에 순간 끓어오르는 감정도 분노이지요. 이런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본능적인 것이랍니다. 하지만 그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분노의 윤리성이 나뉘어지는 셈이지요. 그 분노를 바탕으로 선을 할 수도, 반대로 악을 저지를 수도 있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끓어오르는 감정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지요.
- 예수님도 성전에서 상인들에게 화내셨지요? 의로운 분노도 있는 건가요?
- 네, 때로는 예수님도 분노에 사로잡히시곤 했지요. 그리고 성전에서는 사람들을 쫓아낸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분은 도무지 죄라는 것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은 끓어오르는 마음을 바탕으로 그 다음 할 일을 하신 것 뿐이지요. 성전에서 보인 행동은 사실 계산된 것이었어요.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이 그저 제 할 일을 하도록 구실을 준 것이었지요. 물론 그 순간의 성전 정화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집에 대한 가치를 가르쳐 주려고도 한 것이구요. 하지만 예수님이 성전에 간 것은 그때 한 번 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전통이 요구하는 대로 또 기회가 닿는 대로 성전에 가셨을테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상인들을 쫓아내지는 않으셨어요. 예수님의 그 행동은 예수님의 수난이 다가옴에 따라서 당신의 수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행위였어요.
분노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뒤에 할 일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분노를 그대로 쏟아내서 그 분노를 일으킨 이에게 돌려주느냐 아니면 그 분노를 넘어서서 그를 용서하고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격한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행동이 보다 중요한 것이랍니다. 화가 난다고 그걸 고스란히 돌려주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요. 우리의 분노가 엇나가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지요.
성경 강의를 끝내고 나서 성경 강의의 유일한 남성 참석자 두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는 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 좋은 분노가 있고 나쁜 분노가 있나요?
- 음… 분노라는 것은 하나의 감정이지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따귀를 맞았을 때에 순간 끓어오르는 감정도 분노이지요. 이런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본능적인 것이랍니다. 하지만 그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분노의 윤리성이 나뉘어지는 셈이지요. 그 분노를 바탕으로 선을 할 수도, 반대로 악을 저지를 수도 있답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끓어오르는 감정 자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지요.
- 예수님도 성전에서 상인들에게 화내셨지요? 의로운 분노도 있는 건가요?
- 네, 때로는 예수님도 분노에 사로잡히시곤 했지요. 그리고 성전에서는 사람들을 쫓아낸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분은 도무지 죄라는 것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당신은 끓어오르는 마음을 바탕으로 그 다음 할 일을 하신 것 뿐이지요. 성전에서 보인 행동은 사실 계산된 것이었어요. 예수님은 유대 지도자들이 그저 제 할 일을 하도록 구실을 준 것이었지요. 물론 그 순간의 성전 정화로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집에 대한 가치를 가르쳐 주려고도 한 것이구요. 하지만 예수님이 성전에 간 것은 그때 한 번 뿐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전통이 요구하는 대로 또 기회가 닿는 대로 성전에 가셨을테지요. 하지만 그때마다 상인들을 쫓아내지는 않으셨어요. 예수님의 그 행동은 예수님의 수난이 다가옴에 따라서 당신의 수난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행위였어요.
분노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그 뒤에 할 일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 분노를 그대로 쏟아내서 그 분노를 일으킨 이에게 돌려주느냐 아니면 그 분노를 넘어서서 그를 용서하고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격한 감정은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행동이 보다 중요한 것이랍니다. 화가 난다고 그걸 고스란히 돌려주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해요. 우리의 분노가 엇나가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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