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땅 위에서 치워 버리리니, 올해에 네가 죽을 것이다. 너는 주님을 거슬러 거역하는 말을 하였다.’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 (예레 28,16-17)
예레미야서 28장 첫번째 절에 ‘다섯째 달’ 이 모든 일이 시작되었음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하난야 예언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었다고 합니다. 즉, 두 달의 공백기간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흔히 ‘마른 하늘에 벼락 맞아 죽을 놈’이라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누군가의 죄가 너무나 위중해서 절대로 벼락이 치지 않을 환경에서도 벼락을 맞아 죽을 정도로 악운이 가득하다는 표현이기도 하고, 또 벼락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사람을 죽음으로 보내 버리는 것이기에 벼락을 맞는다는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하느님의 일이 그렇게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 당신께서 보시기에 정말 위중한 사안은 그 순간 바로 이루어 주십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자연의 순리’에 놓아 두십니다. 하지만 그 자연의 순리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합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언제 죽을까요? 때가 되면 죽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자신의 수명을 다하고 죽지는 못할 것입니다. 스스로는 온갖 변명거리를 찾아내어 괜찮다고 하겠지만 인간의 몸이라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이고 스스로의 몸에 독극물을 주입하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수명을 온전히 채우지 못합니다.
운전하면서 쉽게 화를 내고 흥분하는 사람은 언제 죽을까요? 때가 되면 죽을 것입니다. 물론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지만 지나치게 흥분하다 보면 그런 스트레스가 쌓일 것이고 또 흥분 상태에서 운전 조작을 미숙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다른 이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난야 예언자는 ‘죽음’을 예고 받습니다. 그리고 두 달의 공백 기간이 주어지지요. 그 기간 동안 하난야 예언자가 뉘우치고 하느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고백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지도 모릅니다. 그 두 달의 기간은 하난야 예언자에게는 ‘회개의 기회’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하난야 예언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레미야 예언자는 어떠하였을까요? 그 두달의 시간이야 말로 인고의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선포했지만 그 죽음이 실행되지 않는 그 기간동안 하난야 예언자는 더욱 기고만장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조차 예레미야 예언자를 ‘무능한 예언자’, 혹은 ‘말뿐인 예언자’라고 비난하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기간을 거치고 결국 일이 일어났을 때에,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의 위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의심하는 사람들은 존재할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을 온전히 볼 능력이 없고, 누군가 세상을 일찍 떠났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하난야 예언자에게 주어진 두 달의 시간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그 두 달이 두 해가 될 수도 있고, 이십년이 될 수도 있고, 혹은 남은 평생의 기간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돌이키고 하느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당신이 뜻하는 바를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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