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때에는 ‘규정’이 그닥 필요가 없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 양보하고 상대가 바라는 것을 먼저 챙기려고 애쓸 때에는 사회는 그만큼 부드럽고 유동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른은 아이를 참아주고, 젊은이는 어르신들을 참아줄 수 있게 되지요. 인간의 생이란 어린 시절, 또 나이가 들어 기능이 쇠퇴하면서 오류가 많은 법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 내적 가치들이 점점 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참을성, 인내가 사라지게 되고 이 없어진 참을성의 자리에 ‘규정’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규정을 어기는 이에게 우리는 정당하게 ‘분노’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분노하고 화를 냅니다. 그것도 아주 공정하고 정당하게 말이지요. 존재하는 규정을 지키지 않으니 우리는 그에 분노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분노는 사회의 약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적합한 규정의 선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이지요. 헌데 여기에는 숨겨진 진리가 있습니다. 바로 언제라도 우리 스스로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아니, 사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늙게 될 것이고 기능이 퇴화될 것이며, 자주 잊고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우리는 정당한 분노의 대상이 되겠지요. 주어진 규정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의 약자가 되는 것입니다. 음식을 흘리면 안되는데 흘리고, 길을 잊어버리면 안되는데 잊어버리고, 스마트폰의 기능을 모두 활용해서 일을 처리하면 되는데 눈이 침침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우리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면서 서러워하고 한탄을 하게 되겠지요. 젊은이들이 노인들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젊을 때에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지니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저질러 놓은 것을 되받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어르신들을 다른 눈길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관용과 이해와 사랑과 인내를 연습해야 합니다.
- 성체를 손으로 모시는 게 신성모독이라는데 사실인가요?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습니다. 일단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 교회는 전통적으로 성체를 입으로 직접 받아 모셔왔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의 수난 만찬때에 제자들과 모여 함께 나눈 빵을 제자들이 무릎을 꿇고 입만 벌리고 받아 모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손으로 빵을 받아서 나누어 옆의 동료들에게 나누어가며 먹었습니다. 하지만 성체에 대한 공경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감에 따라 부스러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는 극진한 공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제단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입을 벌리고 받아모시게 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신자들의 수가 너무 많아지고 또 입으로 모시다가 자꾸 사제의 손에 침이 발리니 위생상의 문제도 있고 해서 손으로 받아 모시게 한 것입니다. 사실 한국과 같은 곳은 입으로 받아 모시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거의 전부가 손으로 받아 모십니다. - 그럼 그런 표현을 하는 사람은 왜 그러는 건가요? - 제가 보았을 때에는 성체에 대한 극진한 존경심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성체를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좋지만 손으로 모시는 사람을 잘못되었다고 할 필요는 없지요. 여기서는(볼리비아에서는) 입으로 모시는 사람과 손으로 모시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고 둘 다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입으로 모시는 이들의 혀가 제 손에 자꾸만 닿는 것은 분명히 사실이고 이는 굉장히 비위생적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모시는 것이 성체를 흘리고 떨어뜨릴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모시는 것이 보다 안정적이지요. 다만 손으로 모실 때에는 미사 전에 손을 깨끗이 씻고 왼손 아래에 오른손을 받치는 올바른 자세를 갖추고 왼손으로 성체를 받아 뒤의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나서 성체를 모셔야 합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손에 남은 부스러기를 함부로 다루지 말고 입으로 가져가서 혓바닥으로 깨끗이 처리할 필요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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