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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에제 37,1-2)

뼈는 죽은 이들의 잔재를 의미합니다. 곧 죽음 그 자체를 의미하지요. 생명 있는 존재가 뼈를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뼈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숨’이나 ‘피’는 생명을 의미합니다. 특별히 성경은 ‘숨’을 생명의 이미지로 사용합니다. 아담과 이브도 하느님의 ‘숨’으로 생명을 얻었지요.

이제 우리의 주변을 돌아봅시다. 사람들은 모두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육신이 숨쉬고 걸어다닌다고 해서 그들이 살아있다고 단순히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생과 사의 갈림길은 육신보다는 영혼에 더 큰 비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죽어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의 육신은 누구보다도 더 생기 발랄할지 모릅니다. 왜냐면 그들은 모든 것을 잘 가꾸기 위해서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영혼은 목말라하고 메말라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실 크게 어렵지 않은 문제입니다.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고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따라서 그 결과물이 양산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맑은 물을 받아들이면 촉촉해질 것이고, 반대로 악취가 가득 풍기는 것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서도 냄새가 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육신을 위해서는 여러가지 것들을 취하고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식사는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의 영혼을 위해서는 무엇을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그 밖의 여러가지 정보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의 영혼을 살찌울 양식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그리고 실제 삶에서 내가 받아들인 것을 나의 것으로 삼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들은 계곡에 가득 찬 뼈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는 생명이신 분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숨결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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