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히브 11,1)
믿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영적으로 본다는 것은 육적으로 본다는 것에 비유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영적인 눈과 같습니다. 눈이 없으면 육신을 통해서 본다는 것이 불가능해지듯이, 믿음이 없으면 영적으로 본다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사람들은 종교생활에 대해서 많이들 이야기를 하고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믿는다’는 것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경우가 많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내적인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친절, 온유, 평화, 사랑, 인내, 절제와 같은 것을 직접 살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것들을 내려놓은 채로 엉뚱한 것에 전심전력을 하면서 믿음을 충실히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제와 친근하게 지낸다고, 주교와 친분이 있다고 믿음이 있는 삶을 사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정치 권력가라도 교황님을 예방할 수 있고 그 사진을 증거로 남기고 선전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음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요.
성지를 다녀왔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과 함께 호흡한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이 모조리 성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든 사람도 있었지요. 그리고 이런 종류의 사람은 여전히 우리 주변에 존재합니다. 거룩하고 선한 것을 망가뜨리려는 사람들, 도무지 선이라고는 알지 못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허영과 교만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성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요.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우리의 감각으로 느껴지지 않는 분입니다. 아무리 시력이 좋아도 하느님을 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믿음으로써 볼 수 있는 분이니까요. 그러나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일꾼들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그분의 선하심을 깨닫게 되어 보다 참되고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도와주어야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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