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에게 손을 얹고 기도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마태 19,13)
“바쁘신 분에게 그래도 될까?”
우리가 흔히 하는 걱정입니다. 특히나 나름 중요한 위치에 계신 분을 만날 적에 하는 걱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정신없이 바쁘셨고, 수없이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보살피고 가르치느라 밥 먹을 겨를조차 제대로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청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들을 꾸짖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 들려옵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마태 19,14)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두둔하십니다. 그들의 천진함을 보살피십니다. 나아가 하늘 나라가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라고 가르침을 주시기까지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이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아이들은 예수님에게 성가심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그런 아이들을 막으려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성가시게 한 지도 모릅니다.
사제로 살면서 여러 만남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사제의 만남은 세상의 만남과는 달라야 합니다. 사제는 세상이 으뜸으로 삼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으뜸으로 삼는 이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만남은 세상적인 만남과는 성격이 달라야 합니다.
하느님은 누구를 만나고 싶어하실까요? 바로 어린이와 같은 이들입니다. 마음이 맑고 순진하며 하느님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이들을 그분은 만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그 일이 우선입니다. 오히려 다른 일을 제쳐둘 수 있습니다. 건물을 짓고, 신학 토론을 하고, 사료를 남기는 일을 우리는 잠시 제쳐두고 가장 먼저 어린이와 같은 이들을 만나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느님의 사람들이 하느님에게 다가오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바쁘신 분에게 그래도 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바빠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