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은 세상을 말씀으로 만드셨습니다. 왜냐면 하느님에게 당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는 서로 갈라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각은 곧 말로 표현되는 것이고 그 말은 곧 이루어질 능력이 있는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것과 다른 말을 꺼낼 수 있고, 말하는 것과 다른 실천을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인간은 성실성이 부족하고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수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들이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없습니다. 기껏해야 SNS에 아름다운 글귀로 장식된 사진을 올릴 뿐이지요. 그리고 그들은 스스로의 내면으로 가난한 이들을 경멸합니다. 행여나 그들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까 두려워하지요. 그들에게서 나는 냄새를 경멸하고 그들에게 다가서기를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 앞에서 짐짓 의로운 척을 하기 위해서 그들을 옹호하고 도와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도울 마음은 하나도 없는 셈이지요. 하다못해 아주 작은 손해에도 발끈하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아갈수록 우리의 생각은 올바르게 되고, 자연 우리가 하는 말에도 ‘권위’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실천하게 되지요.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그분에게서 지혜를 얻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말을 꺼내고, 자신이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말수가 줄어들게 되지요. 쓸데 없는 말들, 세상이 자기들끼리 떠들어대는 소음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그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보다 올바르게 인식하게 됩니다. 유행을 따라서 뭔가를 먹고 입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을 얻고 그것을 누릴 줄을 알게 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닮는 일은 단숨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주 작은 실천에서부터 서서히 바뀌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특별한 일로 동기가 제공될 수는 있지만 스스로의 의지를 다하지 않으면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사람이 선하게 되고 악하게 되는 모든 것은 자신의 의지적 결정을 반복하고 반복하면서 쌓여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선하게 되기로 결심할 수도 있고, 반대로 악하게 되기로 결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악에서 멀어지고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나약함으로 인해서 쓰러질 수는 있지만 또한 우리는 우리의 나약함을 극복하도록 하느님에게 청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선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선에 익숙해지고 더욱 더 큰 선을 실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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