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코헬 12,1)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에서 비롯한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자유가 없다면 우리의 사랑은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합니다. 사람이 생기가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에 선택을 하는 것과 어쩔 수 없어서 마지못해 하는 선택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닙니다.
몸이 튼튼하고 얼마든지 외적 활동을 할 수 있음에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에 집안에 머무르면서 아내의 살림을 돕고 아내와 정겨운 시간을 보내는 남편과, 늙어서 더는 움직이지를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집안에 찡그린 얼굴로 사는 남편은 전혀 다른 두 모습입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우리가 젊고 혈기 왕성하고 얼마든지 다른 것들에 우리의 애정을 던질 수 있음에도 하느님에게 헌신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미 누릴 쾌락을 다 누리고 이제는 늙어버려 아무런 기력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신앙에 헌신하는 것은 그리 칭찬할 만한 일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올바로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다 시험해 보려고 하지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자신의 소중한 시간이 허비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랑을 훈련하고 쌓을 수 있는 시간이었는데 원하고 바라는 이기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다가 아무런 상급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다른 모든 것(자신의 욕구)을 다 챙기고 그 나머지 찌꺼기를 하느님에게 드리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받게 될 것도 찌꺼기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머무르는 동안 하느님은 지극히 자비로운 분이십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잘못을 그분은 기꺼이 용서하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날, 모든 것이 마무리되는 그 날에는 당신의 정의가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는 모든 것이 태초부터 정해진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젊음의 날에 창조주를 기억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다가오는 날은 ‘불행’의 날이 될 것입니다.
댓글
덕분에 회개할수 있는
좀더 섬세한 양심을 찾고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회개할수 있는
좀더 섬세한 양심을 찾고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