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손으로 몰아세우지 않는 한,
이집트 임금은 너희를 내보내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므로 나는 손을 내뻗어
이집트에서 온갖 이적을 일으켜 그 나라를 치겠다.
그런 뒤에야 그가 너희를 내보낼 것이다.
(탈출기 3,19-20)
신앙 생활을 하겠다는 것은 양다리를 걸친 삶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을 확고히 정하고 그분을 중심으로 삶을 재편성해야 합니다. 당연히 우리의 진정한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힘빠진 다리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어 신앙의 여정을 걸어 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허울 좋은 겉꾸민 삶을 산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여전히 탐욕과 이기심과 분쟁과 험담을 계속하면서 성당에만 나와서 아멘 아멘 한다고 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을 끊어내야 하고 이겨내야 합니다.
하지만 탈출기의 말씀처럼 세상의 왕을 대변하는 이집트의 왕은 호락호락하게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자신의 지배 아래 있기를 바라고 자신의 종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우리의 자유를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우리의 마지막 숨이 멈추는 그날까지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하느님의 강한 힘이 그를 몰아세워야 그가 비로소 미약한 움직임이라도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가 신앙의 여정을 본격적으로 걷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우리가 붙들려 있는 세상의 힘을 떼어내기 위한 당신의 위대한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바라보게 하십니다. 세상이 얼마나 부질없으며 그저 자기자신을 위해서 모으고 쌓기만 한 이들의 최후가 어떻게 되는지 나날이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허망하게 생을 마감하는 인생들을 눈앞에 펼치면서 우리의 생의 본질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하루는 이런 이가 세상을 뜨고 또 하루는 저런 이가 세상을 뜹니다. 심지어는 우리 가까이 존재하던 이들도 데려가시면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십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집착은 좀처럼 끊어지지 않고 유지되곤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더욱 강력한 당신의 손길로 우리를 치십니다. 필요하다면 우리의 사업을 무너뜨리기도 허락하시고 우리의 건강을 상하게도 허락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은 악한 분이 아니기 때문에 당신은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우리가 예비해 놓은 어두움 속에서 살아가고 악마는 늘 우리의 죄의 댓가로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노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신앙에 충실한 동안에 우리를 지켜 주시다가 우리가 신앙의 여정에서 멀어지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당신의 보호의 손길을 치우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앙이 시작됩니다.
이집트에 사로잡혀 있던 이스라엘은 다행히 이집트의 손아귀를 벗어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광야의 40년의 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이집트를 벗어나 광야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아직 이집트에 안주해서 세상에 취해 살아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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