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에 비가 오는 날이면 장화를 신고 우산을 쓰고 놀이터로 나가 흥건히 젖어 있는 흙바닥에서 물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물이 잔뜩 고여 있는 곳에서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고 물을 흘려보내는 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한 놀이였습니다. 그러다가 흙 한 줌을 퍼서 그 물길을 막으면 물은 멈춰서서 고였다가 다시 그 댐을 부서뜨리면 물이 흘러내려갔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그분에게서 충만히 흘러 넘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높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그분의 은총이 우리에게 내려오도록 우리를 겸손으로 낮추는 것이고 또한 그분의 은총의 물길을 가로막는 것을 치워 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그 순종의 대표주자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순명합니다. 늘그막에 얻은 자식,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바치라고 했더라면 더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외아들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순명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지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아브라함은 신약에서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바치는 아버지 하느님의 표상입니다. 아브라함은 최종적으로 아들을 다시 얻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외아들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 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죄악에서 해방되기를 바라셨고 그렇게 우리라는 자녀들을 얻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꾸준한 순명으로 하느님의 은총을 얻어내듯이 마찬가지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꾸준한 순명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이라는 소중한 선물을 얻어냅니다. 순종, 순명은 가톨릭 교회에서 너무나 소중한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소중한 가치가 많이 망가져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지 않고 따라서 거룩함에 순명할 이유도 없습니다.
은총을 얻는 다음 방법으로는 가로막는 물길을 치우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교만과 악한 생각으로 은총의 길을 가로막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것을 치워내도록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십니다. 그분은 율법학자에게 당신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고 그것을 실행하십니다. 그분은 중풍 병자의 병을 단 한 마디의 말로 일순간에 고쳐 주십니다.
이제 은총을 가로막는 것은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을 바라보며 하느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기쁨의 찬양은 은총의 결과물입니다. 은총이 없는 이들은 언제나 투덜거리지만 은총이 가득한 이는 성모님도 그러하듯이 영적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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