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그건 사제라고 해서 더 쉬워지거나 세속을 살아가는 평신도라고 해서 더 어려워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꾸준한 신앙생활은 힘든 일입니다.
세상 일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힘든 세상 일을 신앙 없는 이들이 거뜬히 해내는 이유는 세상에서 보장된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사를 지으면 수확하는 때가 있고, 직장에서 일을 하면 그만한 돈을 벌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수고하고 그 상급을 받아 들입니다.
사실 신앙도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공연히 헛된 일에 애를 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히 그 결과물이 있기에 애를 씁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그 결과물이 우리의 죽음 이후에 주어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신앙의 진위가 나뉘게 됩니다.
진짜 신앙인은 영원 안에서 주어지는 상급을 바라보고 신앙생활을 하고 가짜 신앙인은 현세 안에서 되돌아오게 될 상급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가짜 신앙인은 현세 안에서 돌아올 것이 없다고 판단될 때에 가차없이 신앙을 내던져 버리고 진짜 신앙인은 현세 안에서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꾸준히 자신이 믿는 바를 지켜 나갑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도가 말하는 시대라는 것은 80년대, 90년대와 같이 특정 시기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생애 주기 전체를 통틀어 '이 시대'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전 생애 동안 겪게 될 고난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리다고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고 어른이라고 해서 고난이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노년에 편하게 쉴 생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준비하지만 나이가 들면 또 전에는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새롭게 등장해서 우리를 괴롭히는 체험을 어렵지 않게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고난을 피해서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고난은 우리를 더욱 더 엄습해 올 뿐입니다.
우리의 생의 목적은 고난을 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은 영원 안에서 완성될 희망을 바라보면서 고난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 고난 속에 숨어 있는 하느님의 뜻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고난들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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