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걱정 없이 살려면 우짜마 됩니까?" 본당 신자분이 한탄하듯 하신 질문입니다. 답변을 드렸습니다. "어떤 걱정이냐에 달렸지요." 그렇습니다. 어떤 걱정이냐에 달렸습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신경쓰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는 그날 그날의 염려를 실제로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책임 하에 있는 일들이고 우리가 마땅히 신경써야 하는 일입니다. 사제가 신자들을 돌보는 일이나 아버지가 자녀들을 돌보는 일은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끌어안고 고심하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있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본질을 살아갈 때에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신뢰 안에서 살아가게 되고 그분의 은총의 보호 아래 놓이게 됩니다. 그러면 사라지는 걱정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원'에 대한 걱정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죽음이라는 것에서 해방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자기 홀로 준비해야 하고 그런 가운데 큰 실패를 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좌절이 있다면, 언제나 든든히 뒤를 봐 주는 부모님이 계신 가운데 이런 저런 시도들을 실패하는 사람의 마음은 전혀 다릅니다. 언제라도 마지막 목적지를 뚜렷이 가지고 있는 신앙인은 이 세상에서 나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해방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자기 홀로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은 극도의 신경질적인 경계심 속에서 살아가야 하겠지요. 사실 하느님과의 유대관계가 없는 사람은 영혼이 메마른 사람입니다. 영원하신 분과의 친교가 없기에 그는 애써 사람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고 하지만 결국 체험하게 되는 것은 세상에 믿을 놈이 없다는 체험 뿐입니다. 반면 하느님에게 신뢰를 두는 사람은 온 세상이 자신을 배신해도 최후의 신뢰처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