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사람 두 사람이 모인다고 앎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모르는 것은 그것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지식은 우리의 지혜를 통해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을 찾아나갈 수 있고 새로운 지식을 축적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지식은 영적인 분에게서 답을 구해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는 여러가지가 공존합니다. 인간적 영역과 신적인 영역이 함께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적인 영역은 우리 상호간의 노력으로 키워나갈 수 있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수많은 역사를 거쳐오면서 교회 안의 많은 것들이 발달해 왔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지내는 건물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작부터 우리가 지닌 여러가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시대를 통해서 서서히 형성시켜 온 것이고 또 앞으로도 변화되어 갈 것들입니다.
하지만 '신적인 영역'은 위로부터 주어진 것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변모와 같은 사건은 우리가 만들어 낸 무언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교를 '계시 종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체계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드러내 보이신 것 믿고 그것을 바탕으로 필요한 것을 구축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반드시 '기도생활'이 뒤따라야 합니다. 인간적인 선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반드시 하느님과의 유대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대표하는 활동이 바로 '기도'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초월성을 근간으로 합니다. 기도는 인간적인 이유로 하는 활동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것들은 인간들의 수준에서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이 지닌 초월성을 바탕으로 하고 하느님과의 유대관계를 맺도록 돕는 행위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의 답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염경, 묵상, 관상 등등 여러가지 종류의 기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기도의 핵심은 '인간적 영역을 초월하는 분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하는 것은 각자의 선호도에 달린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묵주를 쥘 수도 있고 누군가는 성체 앞에 머무를 수도 있고 또다른 누군가는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도 행위의 다양한 종류와 상관 없이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기도해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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