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행위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좋아 보이는 행위라도 실은 이기적인 목적을 지닐 수 있습니다. 또 정반대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찮아 보이고 의미 없어 보이는 행위라도 그 내면에 지극히 고귀한 목적을 지닐 수 있습니다.
선교라고 해서 모두가 선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지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선교사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서도 자신의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은 흔히 선교지의 생활은 엉망으로 하면서 나와서는 자신이 가장 고생하는 사람인양 둔갑을 해서 사람들의 선의에서 나오는 열매를 털어가서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이용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본당에서 별로 눈에 드러나지도 않고 그가 하는 일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실은 자신의 가정에서 수많은 반대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끈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충실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가 지닌 내적 가치는 세상의 시선으로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지극히 평범한 일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상의 모든 행위가 거룩한 일로 변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들은 성인들의 유해를 얻기 위해서 애를 쓰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하게 사신 분의 머리털 하나라도 소중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시체'는 정반대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정을 탄다고 그들이 사용했던 물건 조차도 쓰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분이 사용했던 것이라면 그 손길이 닿기만 한 것이라도 내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습니다. 마찬가지로 거룩함이 닿아 있는 사람의 일상적인 삶의 모든 순간은 거룩한 것이 됩니다.
그 반대로 살아갈 때에 우리는 '방해꾼'이 되게 됩니다. 이 방해는 3가지로 나누어 표현됩니다. 유다인이 상징하는 것은 '전통과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리스인이 상징하는 것은 '상식과 지성'입니다. 하느님의 교회가 상징하는 것은 '영혼과 믿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에서 완성되어 가야 합니다. 믿음을 고수한다고 이미 남겨져 있는 전통과 율법의 가치를 무시해서도 안되고, 더군다나 상식과 지성에 반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굳은 신앙 안에서 모든 것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성실하게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모든 이의 구원에 더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모든 것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바라지 않고 그들에게 유익한 것, 나아가 하느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을 찾게 됩니다. 그 길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고 우리가 마땅히 본받아야 하는 길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