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이미지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착해 보이고 싶은 우리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진정한 의미의 선함과 착해 보임을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늘 1독서에는 '멍에를 부수어 버린다'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건 어떨까요?
"나는 혼인생활이 멍에였어. 오늘 성경 말씀에는 멍에를 부수어 버리라 하였지. 그러니 나는 이 결혼이라는 멍에를 부수어 버리고 이혼할거야. 나는 내가 사귀고 싶은 사람을 아무렇게나 사귀고 원하는 대로 술도 마시고 타락한 생활을 하고 싶어."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이것이 멍에를 부수어 버리라는 성경말씀의 본뜻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초등학생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그 멍에를 부수면 그로 인해서 다른 누군가의 멍에가 가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멍에라는 것은 누군가 마땅히 지고 가야 할 의무를 멍에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의미하는 멍에라는 것은 원래는 지워지지 말아야 하는 것이 과도하게 부여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가 있으면 국민이 있고 국민의 의무가 있습니다. 가정이 있으면 가족 구성원이 있고 가족 구성원의 의무가 있습니다. 교회가 있으면 신자들이 있고 신자들의 의무가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멍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건 우리가 마땅히 지고 가야 할 소명입니다. 사제가 미사 드리는 게 부담스럽다고 그걸 피하려고 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수도자가 기도하는 게 부담스럽다고 그걸 피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이겠습니까?
무턱대고 모든 멍에를 끌러 주는 것은 절대로 선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오히려 조심해야 하는 일입니다. 무엇이 멍에인지 올바로 식별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필요한 것을 풀어줄 수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가는 할머니에게 지팡이가 무거워 보인다고 들어 드리겠다고 하면 그건 할머니를 돕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선교 사명을 수행하기에 충분히 먹어야 하고 또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기에 충분히 그 친교의 기쁨을 식사와 더불어 나누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때가 올 터인데 신랑을 잃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단식의 의미에는 영적인 의미가 더 많습니다. 영적 가르침이 충만하던 영혼에게 더는 길을 알려주고 가르쳐주지 않는 영혼의 단식이 다가올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영혼은 그때에는 스스로 영혼을 채울 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단식의 본질적 의미는 단순히 '음식의 단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식의 본질적 의미는 '세속성의 단절'을 의미하고 이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영적인 굶주림에 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런 영적인 필요를 느끼는 사람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실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은총이 다가오는 자리를 올바로 파악하고 그리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천하는 이는 비로소 하느님의 응답을 얻게 됩니다.
당신은 제사를 즐기지 않으시기에, 제가 번제를 드려도 반기지 않으시리이다.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뉘우치는 마음을, 하느님, 당신은 업신여기지 않으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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