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때에 우리가 물을 사용하는 이유는 물의 여러가지 내적 의미 때문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물은 그 파괴적 성향을 감추고 있습니다. 물에 빠지거나 큰 물난리를 겪어본 사람이면 물이 얼마나 위험하고 혼란스럽고 무서운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물은 그 내면의 파괴성으로 인해서 혼돈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사건에서 물은 바로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물은 깨끗하지 못한 것들을 파멸시켜 버리는 정화의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올바로 이해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은 무턱대고 아무 이유 없이 파괴한 것이 아니라 인간 타락의 결과로 심판의 도구로 물을 사용하셨다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약속, 계약이 주어집니다. 당신의 물의 심판을 통과한 존재들과 맺는 계약입니다. 그들에게는 다시 물이 홍수, 즉 혼돈과 파멸이 되어 덮치는 일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은 이미 한차례 물이 휩쓸고 지나갔고 그 뒤에 맺어지는 계약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계약은 쌍방 약속입니다. 약속에 충실한 동안에는 지켜지지만 약속이 엇나갈 때에는 파괴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오늘 1독서를 잘 살펴보면 이것이 '세례'라는 행위의 비유적 표현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에 다가오면서 세례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존재하는 하느님에게서 엇나간 것들이 1차로 씻겨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고 그분과 계약 관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당신의 말씀과 계명에 충실한 동안에는 우리에게 파멸이 닥치지 않으리라는 계약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세례를 받고 나면 세상에서 그 어떤 불운한 일도 생기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게 말하기엔 세상은 여전히 고통이 극심합니다. 심지어 물로 쓸어버리지 않겠다고 하고서는 쓰나미나 홍수와 같은 재앙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런 사건들을 계기로 사람들이 죽어나가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물이 홍수가 되어 파멸시키지 않는다는 말의 영적 의미를 되새겨야 합니다. 그것은 실질적인 우리의 몸이 절대로 물에 희생당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본질적인 의미는 우리가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할 때에 우리의 영혼이 다시는 혼돈과 파멸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독서와 복음은 사순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이미 받은 세례를 상기시키고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하느님께 돌이켜 세례 때에 당신과 맺은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게 만들어 줍니다.
"주님은 어질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도 길을 가르치신다. 가련한 이 올바른 길 걷게 하시고, 가난한 이 당신 길 알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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