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것들은 외부 자극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내부에서 형성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내면을 통해서 재생산해 냅니다. 실례로 같은 한정식인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먹은 그 밥과, 또 반대로 내가 정말 싫어하는 직장 상사와 먹는 밥의 맛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실상 많은 것들을 내면에서 조작해서 느끼고 있는 셈이지요.
우리가 기쁘고, 슬프고, 싫증나고, 화를 내는 거의 수많은 이유들이 실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습니다.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수용하고 받아들이냐 하는 그 결정에 따라서 많은 것들의 의미가 정해지는 법이지요.
하느님은 어린 아이와 같은 내면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창조자’였습니다. 작은 막대 하나로 얼마든지 놀이를 창조해 내고는 하였지요. 그리고 열심히 그 놀이에 치중하고 끝나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따로 현실이랄 것이 없었지요. 거의 모든 활동이 놀이였습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의미로 살펴보면 단순히 나이를 먹고 몸이 커가는 것이 아니라 이 창조성을 잃어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아이와 같은 마음’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요소들에 신비로움을 체험하고 전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우리의 내면의 활동을 ‘어린아이다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는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새로이 해석하는 천진한 창조성을 잃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어른들은 어린아이의 새로움으로 하루하루를 꾸며 나갑니다. 그들은 절대로 늙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느님을 닮은 작은 창조자들입니다. 그들 곁에 있는 이들은 심심할 새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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