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느님을 움직이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움직이셔야 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움직이려 합니다. 내가 이런 행위를 하면 하느님이 좋아 하시겠거니 생각을 합니다. 또 반대로 내가 저런 행위를 하면 하느님이 슬퍼하시겠거니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봉헌해서 당신의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미사를 한 대 정성스레 바치면 하느님이 좋아하고, 내가 잘못에 쓰러지면 하느님이 나를 미워하는 구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를 아끼시고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나가 떨어지는 이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죄인에게도 햇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우리의 수동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긍정적인 수동’입니다. 우리가 어느 사물에 마음을 사로잡히거나 어느 악습에 마음을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부정적인 수동성에 불과하지만 하느님에게는 얼마든지 사로잡혀도 좋습니다. 왜냐면 그분은 우리를 이끌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어찌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어찌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앙’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전적인 의지의 능동적인 봉헌,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동성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움직이셔야 합니다.
수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움직이려 합니다. 내가 이런 행위를 하면 하느님이 좋아 하시겠거니 생각을 합니다. 또 반대로 내가 저런 행위를 하면 하느님이 슬퍼하시겠거니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봉헌해서 당신의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미사를 한 대 정성스레 바치면 하느님이 좋아하고, 내가 잘못에 쓰러지면 하느님이 나를 미워하는 구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를 아끼시고 보살피시는 분이십니다. 나가 떨어지는 이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렇게 되는 것일 뿐입니다. 하느님은 죄인에게도 햇빛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우리의 수동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긍정적인 수동’입니다. 우리가 어느 사물에 마음을 사로잡히거나 어느 악습에 마음을 사로잡혀 있다면 이는 부정적인 수동성에 불과하지만 하느님에게는 얼마든지 사로잡혀도 좋습니다. 왜냐면 그분은 우리를 이끌어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어찌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어찌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신앙’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전적인 의지의 능동적인 봉헌,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동성이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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