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이루어졌다’는 주제를 다루고 이번에는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선포에 뒤이어 감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깁니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5-27)
수많은 과부들 중에 한 과부, 수많은 나병 환자 중에 한 사람 만이 하느님의 은총을 입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측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이들의 선택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느님이 일방적으로 내미는 강요가 아니라 수용자의 선택, 응답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르시고 계시고 우리는 ‘응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다해서 응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전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고 도리어 영원을 들고 오는 분을 의심하기가 일쑤입니다. 빛을 구분할 줄 모르고 어둠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루카 4,25-27)
수많은 과부들 중에 한 과부, 수많은 나병 환자 중에 한 사람 만이 하느님의 은총을 입습니다. 그것은 하느님 측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이들의 선택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은 하느님이 일방적으로 내미는 강요가 아니라 수용자의 선택, 응답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르시고 계시고 우리는 ‘응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다해서 응답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은 전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하고 도리어 영원을 들고 오는 분을 의심하기가 일쑤입니다. 빛을 구분할 줄 모르고 어둠을 사랑하는 이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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