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곤 합니다. 그래서 ‘겸손’의 가치를 얻지 못합니다.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래서 보는 이들의 의견을 무시하곤 합니다.
음속으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음속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분별력이 있을리가 없고 따라서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적어도 겸손을 가지고 있다면 한가지 장점은 그런 능력을 지닌 이들을 통해서 조금씩 배워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능력도 없는데다가 겸손하지조차 못해서 능력 있는 이들이 가르쳐 주려는 것을 코웃음을 치며 넘기려다가는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이가 되고 맙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은 언제라도 잃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헌데 가끔씩 만나게 되는 교만한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선의를 짓밟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현명함으로 내세우는 이들입니다.
음속으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음속을 감지할 수 있는 감각기관이 있어야 합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그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분별력이 있을리가 없고 따라서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적어도 겸손을 가지고 있다면 한가지 장점은 그런 능력을 지닌 이들을 통해서 조금씩 배워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능력도 없는데다가 겸손하지조차 못해서 능력 있는 이들이 가르쳐 주려는 것을 코웃음을 치며 넘기려다가는 결국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이가 되고 맙니다.
하느님 앞에서의 겸손은 언제라도 잃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감히 대적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닙니다. 헌데 가끔씩 만나게 되는 교만한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선의를 짓밟고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현명함으로 내세우는 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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