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녹차를 마실 때에 그 맛은 정말 이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달든지 짜든지 해야 하는데 녹차라는 것은 그저 밍밍한 맛으로 느껴질 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것을 마시느니 차라리 콜라를 마시는 것을 더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녹차의 효능에 대해서 알게 되고, 나아가 녹차를 즐기는 여러가지 방법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스스로 녹차를 찾게 되고 배우게 되었으며 나아가 배울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거의 느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말입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세상’이라는 눈 앞에 생생하게 드러나는 현실에 익숙해져 왔을 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오감의 작용에 굉장히 민감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오감을 작용하는 것에 무엇보다도 먼저 반응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의 내면의 존재를 느끼게 됩니다. 세상이 단순히 우리 오감의 작용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지요. 즉,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강아지를 잃었을 때에 느끼는 슬픔이라는 것도 체험하게 되면서 우리 내면 안에 단순히 육신만이 아닌 무언가가 생생히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 깨달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만든 장난감의 의미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우리가 만들지 않은 것의 의미를 우리가 스스로 설명할 수는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에 대해 사람은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가 배우기 쉽도록 많은 방법들을 마련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길이 되어 주시는 것이지요.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누구이시며 어떻게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선물하신 영의 의의가 무엇이며 어떻게 가꾸어 나가야 하는지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이면 그분에게 다가가서 생명의 물을 받아마실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렇게 배우고 알아갈수록 흥미로움은 더해만 갑니다. 우리는 전에 미처 보지 못했던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의 눈이 열려감에 따라서 전에는 무시하고 살았던 것들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반대로 우리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서 마음을 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훗날 우리 모두는 하늘 나라에서 녹차를 마시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에 준비된 자들은 그 녹차의 맛을 즐길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자들은 여전히 콜라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는 안타깝게도 ‘콜라’는 준비되어 있지 않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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