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로서는 가난한 이들과 산다는 것은 하나의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삶을 지켜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유함에 둘러싸여 살 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가난한 이들은 부유한 이들이 하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즉, 커피를 마시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스타XX를 마시느냐 엔젤리XX를 마시느냐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떤 브랜드의 커피를 가져다 주어도 그들은 행복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부유한 이들에게 이는 하나의 ‘옵션’으로 적용이 되고 자신이 선호하는 무언가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해 합니다. 즉 늘 자신이 먹던 커피에 휘핑 크림을 얹고 카페인은 제거해야지 비로소 만족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들은 단순히 ‘커피가 존재한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부유한 이들, 즉 삶의 조건을 부유함 속에서 꾸려가는 이들은 스스로의 문제거리를 스스로 조장하는 꼴이 됩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의 가난을 보면서 거부감을 느끼지만 실제로 자기 스스로의 삶의 모습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지요.
가난한 이들이 더러운 그릇에 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음식을 가져다 주어도 가난한 이들 끼리는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하는 음식에도 그런 결과물이 나올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이웃이 내어주는 그 음식에 담긴 사랑에 감사할 줄 알지요. 하지만 만일 부유한 이가 여기 와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그들은 감사는 커녕 도리어 짜증을 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부유해진다는 것, 마음으로 여러가지 부유함의 조건들을 갖추어 나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가난한 이, 즉 마음이 가난한 이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부자 동네에 가서도 기쁘게 생활할 수 있고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서도 그들의 마음을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부자가 되기로 했으니까요.
가난한 이들은 부유한 이들이 하는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합니다. 즉, 커피를 마시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스타XX를 마시느냐 엔젤리XX를 마시느냐는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어떤 브랜드의 커피를 가져다 주어도 그들은 행복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부유한 이들에게 이는 하나의 ‘옵션’으로 적용이 되고 자신이 선호하는 무언가를 얻지 못하면 스스로 불행해 합니다. 즉 늘 자신이 먹던 커피에 휘핑 크림을 얹고 카페인은 제거해야지 비로소 만족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들은 단순히 ‘커피가 존재한다’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부유한 이들, 즉 삶의 조건을 부유함 속에서 꾸려가는 이들은 스스로의 문제거리를 스스로 조장하는 꼴이 됩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의 가난을 보면서 거부감을 느끼지만 실제로 자기 스스로의 삶의 모습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지요.
가난한 이들이 더러운 그릇에 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음식을 가져다 주어도 가난한 이들 끼리는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자신이 하는 음식에도 그런 결과물이 나올 걸 알고 있고 그래서 이웃이 내어주는 그 음식에 담긴 사랑에 감사할 줄 알지요. 하지만 만일 부유한 이가 여기 와서 이런 대접을 받는다면 그들은 감사는 커녕 도리어 짜증을 내기 시작할 것입니다.
부유해진다는 것, 마음으로 여러가지 부유함의 조건들을 갖추어 나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가난한 이, 즉 마음이 가난한 이로 남을 것입니다. 저는 부자 동네에 가서도 기쁘게 생활할 수 있고 가난한 이들과 어울려서도 그들의 마음을 누릴 수 있는 진정한 부자가 되기로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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