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제때에 아름답도록 만드셨다. 또한 그들 마음속에 시간 의식도 심어 주셨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시작에서 종말까지 하시는 일을 인간은 깨닫지 못한다. (코헬렛 3,11)
성경 저자는 이미 깨닫고 있었습니다. 시간의 비밀을 말이지요.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강물이 흘러 지나가듯이 지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이라는 것은 ‘현재’ 뿐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의아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서 형성된 의식일 뿐입니다. 모든 시간은 현재입니다.
그럼 ‘과거를 다시 꺼내올 수 있느냐?’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러올 수 있느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시간에 종속된 우리들의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실제 과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미래도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는 고정된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고, 미래는 지금의 씨앗의 형태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때가 되면 씨앗은 부화하고 그리고는 과거의 기억으로 넘어갈 뿐이지요.
사실 미사라는 것은 현재화 되고 있는 과거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의 미사 때마다 과거를 ‘되살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지요. 바로 예수님의 수난의 시간을 되살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분의 수난에 동참할 결심을 하며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심어진 의식일 뿐입니다. 모든 시간은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가 됩니다. 바로 현재에 우리가 지닌 의지야말로 모든 시간을 쥐고 흔드는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의지라는 것은 사실 보잘것 없는 것입니다. 아주 미흡한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의지가 위대한 분의 의지를 담아낼 때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 이끌어가게 되지요.
우리는 하느님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하찮은 능력으로 그분의 위대함을 가늠한다는 것은 유치원생이 대학생의 공학 작품을 보고 판단하려는 꼴에 비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하느님의 일을 뭔가 거창한 것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일상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쁜 말을 하고, 다른 이를 위한 선의의 마음을 지니고 실천하며,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것을 평화 가운데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작은 일을 실천하는 가운데 큰 일이 맡겨지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모르는 이들은 무턱대고 큰 프로젝트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건물을 짓고, 작품을 만들고 뭔가 자신의 이름을 남겨야 하는 일을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하지요.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하느님은 산들바람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십시오. 거기에 모든 비밀의 열쇠가 있습니다.
성경 저자는 이미 깨닫고 있었습니다. 시간의 비밀을 말이지요. 우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강물이 흘러 지나가듯이 지나간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시간이라는 것은 ‘현재’ 뿐입니다. 무슨 소리를 하는가 의아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실제로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서 형성된 의식일 뿐입니다. 모든 시간은 현재입니다.
그럼 ‘과거를 다시 꺼내올 수 있느냐?’ 혹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불러올 수 있느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이런 질문 자체가 시간에 종속된 우리들의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실제 과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미래도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는 고정된 기억의 형태로 존재하고, 미래는 지금의 씨앗의 형태로 존재할 뿐입니다. 그리고 현재의 때가 되면 씨앗은 부화하고 그리고는 과거의 기억으로 넘어갈 뿐이지요.
사실 미사라는 것은 현재화 되고 있는 과거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의 미사 때마다 과거를 ‘되살리는’ 행위를 하는 것이지요. 바로 예수님의 수난의 시간을 되살려 다시 마음을 다잡고 그분의 수난에 동참할 결심을 하며 그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 안에 심어진 의식일 뿐입니다. 모든 시간은 현재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의지가 됩니다. 바로 현재에 우리가 지닌 의지야말로 모든 시간을 쥐고 흔드는 핵심이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의지라는 것은 사실 보잘것 없는 것입니다. 아주 미흡한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의지가 위대한 분의 의지를 담아낼 때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 이끌어가게 되지요.
우리는 하느님이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하찮은 능력으로 그분의 위대함을 가늠한다는 것은 유치원생이 대학생의 공학 작품을 보고 판단하려는 꼴에 비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손길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그분의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요? 하느님의 일을 뭔가 거창한 것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의 일상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쁜 말을 하고, 다른 이를 위한 선의의 마음을 지니고 실천하며,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것을 평화 가운데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작은 일을 실천하는 가운데 큰 일이 맡겨지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모르는 이들은 무턱대고 큰 프로젝트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건물을 짓고, 작품을 만들고 뭔가 자신의 이름을 남겨야 하는 일을 한다고 스스로를 재촉하지요.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하느님은 산들바람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십시오. 거기에 모든 비밀의 열쇠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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