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직은 양들의 목자의 직분입니다. 그리고 사제 또한 예수님의 양이라는 것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목자이신 예수님은 구유의 어린 아기로 오셔서 사람들 안에 살아가셨고,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왕이시며, 결국 가장 미천한 죄인들이 매달리는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신 분이십니다. 즉,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스펙을 쌓는다, 즉 경력을 쌓는다는 말은 어딘가에 전문화 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헌데 과연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보다 양들을 위해서 헌신하려는 스펙인지 아니면 높아지는 위치를 통해서 자신의 안위를 구하는 스펙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타를 열심히 연습하는 신부가 있다면 그것은 양들을 돌보는 데에 한 몫을 하기 위해서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일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에 열중하는 사제가 있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오르려는 탑은 자신의 본질적인 사제직분과는 전혀 상관없는 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높아지려면 가장 낮은 곳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낮아지는 것이 가장 높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전문화된 세상에 발맞추어 전문화된 사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언뜻 맞는 말인 듯도 싶지만, 실제로 내면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엇을 위한 스펙이고 무엇을 위한 전문화인지 성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스펙과 전문화가 교만의 탑에 스스로를 가두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자에게는 양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스펙을 쌓는다, 즉 경력을 쌓는다는 말은 어딘가에 전문화 되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헌데 과연 이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보다 양들을 위해서 헌신하려는 스펙인지 아니면 높아지는 위치를 통해서 자신의 안위를 구하는 스펙인지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기타를 열심히 연습하는 신부가 있다면 그것은 양들을 돌보는 데에 한 몫을 하기 위해서이어야 합니다. 단순히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은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일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연습에 열중하는 사제가 있다면 이는 주객이 전도되어버린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오르려는 탑은 자신의 본질적인 사제직분과는 전혀 상관없는 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 높아지려면 가장 낮은 곳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장 낮아지는 것이 가장 높아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전문화된 세상에 발맞추어 전문화된 사제가 필요하다는 것은 언뜻 맞는 말인 듯도 싶지만, 실제로 내면으로는 전혀 다른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무엇을 위한 스펙이고 무엇을 위한 전문화인지 성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스펙과 전문화가 교만의 탑에 스스로를 가두는 결과가 일어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자에게는 양의 냄새가 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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