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메커니즘
나 자신을 가만히 살펴보면,
뭔가 사고 싶은 게 많았다.
만화책, MP3, 노트북, 전자키보드, 카메라 등등등...
그리고 그럴 때면 돈이 필요했다.
문제는 사고 싶은 게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가 지나가고 나면 또 하나가 다가왔기에
돈도 '늘' 필요했었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에 그것을 가진 돈으로 구입하는 건 자연스러운 거다.
하지만 가장 우선에는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를 살펴야 한다.
내가 필요로 했던 것이 왜 필요한가를 살펴보니
'하고 싶었던 게' 많았던 거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걸 해내기도 했다.
만화도 그렸고, 피아노도 쳤고, 길에 다니면서 음악도 들었고, 사진도 곧잘 찍었다...
그나마 난 내가 구입한 걸 쓴다는 걸 위안 삼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한계에 봉착했다.
한 인간이 도저히 그 많은 것들을 다 똑같이 해 낼 순 없다는 걸,
최근에야 비로소 제대로 깨달은 거다.
그때부터 내가 나의 시간을 무엇에 투자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난 사제였고, '거룩함'에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
사람들을 그 '거룩함'으로 이끄는 데에 노력해야 했다.
그 결론이 다다르자,
쓸데없는 활동들에서 조금씩 마음을 떼어내기 시작했고
실제로 가지고 있던 것들도 여럿 처분을 했다.
카메라는 이미 강도를 당했고,
그나마 아이폰이 사진기가 좋아져 그걸로 만족하는 형편이다.
피아노도 본당에 기증하고,
늘 구석탱이에 처박아두던 바이올린도 처분을 했다.
볼리비아에 오면서 한국에 남겨뒀던 만화책들은 최근에 친척 아이들에게 준다길래 그러라 했다.
이렇게 저렇게 가지고 있던 걸 처분했는데도
사실 아직도 미련이 많은 것 같다.
날이 갈수록 뭔가 잡다한 걸 하고 싶은 마음이 덜해지고,
그 자리에 오직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더욱 더 채워 넣을 때에,
비로소 나란 사람이 제대로 완성될 것 같다.
사실 사람들이 다투는 이유도 별 거 아니다.
제 하고 싶은 걸 못해서 서로 다투게 되는거다.
구원에 직결되지 않는 다음에야,
그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보조를 맞추어 주면
모르긴 해도 다툴 일도 굉장히 줄어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