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임 신부로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갖은 경우의 사람들이 다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중에 영신사정을 구하려고 찾아오는 이는 거의 0%에 가깝습니다. 거의는 교회와 연관된 행정적인 문제로 찾아옵니다. 심지어는 세례를 원해도 이상한 케이스들만 들고 찾아오기 일쑤입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전반적으로 일해왔다는 걸 반증하는 것 뿐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그들의 사정을 돕되 그들의 양심에 엇나지 않게 하도록 하는 것 뿐입니다.
이들에게 세례가 갖는 의미는 주민등록에 크게 엇나가지 않습니다. 혼배에도 온갖 미신적 요소가 결합되어 날짜를 정해야 하고 적어도 홀수해는 피하고자 합니다. 이런 저런 껍데기 신앙들 속에서 진정한 빛을 찾는 이가 아쉽습니다,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느 우물가에서 이방 여인에게 '목이 마르다'고 하신 모양입니다.
이들의 관심을 하느님께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미 교회는 언제까지 이런 행정적인 문제로 적지않은 시간을 신자들과 씨름해야 하는걸까요? 한편의 교회 자체의 각성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걸까요?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교계제도는 그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 걸까요?
이런 자성 속에서 사제로서의 제 역할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신자들은 교회에서 거룩함을 찾고,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먹여 주어야지요. 즉, 거룩함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사제들은 하느님과의 만남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합니다. 즉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를 살펴 신자들이 바라보기에 거룩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나도 사람인데'라는 말로 자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신자분들도 이런 움직임에 발맞추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를 이상한 취미생활의 동료로 끌어들이지 않고 그가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도록 기도해주고 희생으로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런 서로간의 쌍방향의 움직임 속에서 교회는 비록 절뚝 거리지만 걸음을 걸어 나가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 모든 이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증오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몇가지 사례만 봐도 신자분들은 성직자와 수도자에 대해서 자신의 체험에 비롯한 알지못할 반감에 사로잡혀 있고, 또 반대의 방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비난하는 이런 화살들을 거두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시간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길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서로를 향해 비난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이제 일어나 갑시다. 때가 왔습니다.
아멘.
이런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전반적으로 일해왔다는 걸 반증하는 것 뿐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그들의 사정을 돕되 그들의 양심에 엇나지 않게 하도록 하는 것 뿐입니다.
이들에게 세례가 갖는 의미는 주민등록에 크게 엇나가지 않습니다. 혼배에도 온갖 미신적 요소가 결합되어 날짜를 정해야 하고 적어도 홀수해는 피하고자 합니다. 이런 저런 껍데기 신앙들 속에서 진정한 빛을 찾는 이가 아쉽습니다,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어느 우물가에서 이방 여인에게 '목이 마르다'고 하신 모양입니다.
이들의 관심을 하느님께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미 교회는 언제까지 이런 행정적인 문제로 적지않은 시간을 신자들과 씨름해야 하는걸까요? 한편의 교회 자체의 각성의 문제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 걸까요? 신자들이 교회 공동체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고 교계제도는 그에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 걸까요?
이런 자성 속에서 사제로서의 제 역할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신자들은 교회에서 거룩함을 찾고,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신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먹여 주어야지요. 즉, 거룩함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사제들은 하느님과의 만남에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합니다. 즉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요. 스스로를 살펴 신자들이 바라보기에 거룩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까지나 '나도 사람인데'라는 말로 자위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입니다. 물론 신자분들도 이런 움직임에 발맞추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사제를 이상한 취미생활의 동료로 끌어들이지 않고 그가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도록 기도해주고 희생으로 도와 주어야 합니다. 이런 서로간의 쌍방향의 움직임 속에서 교회는 비록 절뚝 거리지만 걸음을 걸어 나가기 시작할 것이고, 결국 모든 이를 구원의 길로 이끌어 나가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증오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몇가지 사례만 봐도 신자분들은 성직자와 수도자에 대해서 자신의 체험에 비롯한 알지못할 반감에 사로잡혀 있고, 또 반대의 방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서로가 비난하는 이런 화살들을 거두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시간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느님을 향해 나아갈 길을 찾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서로를 향해 비난하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이제 일어나 갑시다. 때가 왔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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