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죽음으로 얻는 부활)
버리려면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충만하게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비겁하게 자신의 삶을 두고 한탄만 한다면 마땅히 주어도 준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자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우선적으로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가진다는 것의 의미도 알고 가져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누릴 줄 알고 기꺼이 받아들일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이 진정 소중한 줄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다음 단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버리는 것', '소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조금씩 내어 놓아야 합니다. 내가 가졌던 물건들부터 시작을 해서, 나의 명예와 나의 권력을 차츰 차츰 내어 놓아야 합니다. 가져 보았기 때문에 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착'하진 않았기에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심하게 '집착'하였더라도 내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어주다가 보면 마지막 단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입니다.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나 철저히 우리의 것이 되어 버린 우리의 마지막 발판. 내 존재의 근거지이자 더 이상의 무엇이 없을 것 같은 가장 밑바닥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손에 쥔 이 '생명'을 우리의 자의로, 우리의 사랑으로 양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적인 시선으로 따지면 굉장히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줄 때는 언제고 조금씩 빼앗아가더니 결국에는 몽땅 다 다시 내어 놓으라니 놀부 심보도 이런 놀부 심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선 조금 다른 점, 아니 많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놀부는 그렇게 홀라당 빼앗고도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신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시고, 사랑이 가득하신 그분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하시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내어놓는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내어주십니다. 아니, 꼭 죽는 순간만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포기해나가는 자리자리마다 '영원한 생명'을 채워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기뻐합니다. 이 충만한 행복감은 우리가 다른 무언가를 '소유'했을 때에 느끼는 것에 비할바가 되지 못합니다. 이 행복감은 우리의 가슴에서 솟아올라 우리를 가득 채워줍니다. 그리고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리고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우리의 경험이나 관찰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가 됩니다.
당신은 십자가와 그 부활을 믿으십니까?
버리려면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충만하게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내어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비겁하게 자신의 삶을 두고 한탄만 한다면 마땅히 주어도 준 것이 아닙니다. 원래 자기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장 우선적으로 자신의 삶을 진정으로 소유해야 합니다. 가진다는 것의 의미도 알고 가져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누릴 줄 알고 기꺼이 받아들일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삶이 진정 소중한 줄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다음 단계가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바로 '버리는 것', '소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조금씩 내어 놓아야 합니다. 내가 가졌던 물건들부터 시작을 해서, 나의 명예와 나의 권력을 차츰 차츰 내어 놓아야 합니다. 가져 보았기 때문에 줄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집착'하진 않았기에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심하게 '집착'하였더라도 내어주면서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어주다가 보면 마지막 단계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입니다.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으나 철저히 우리의 것이 되어 버린 우리의 마지막 발판. 내 존재의 근거지이자 더 이상의 무엇이 없을 것 같은 가장 밑바닥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손에 쥔 이 '생명'을 우리의 자의로, 우리의 사랑으로 양도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적인 시선으로 따지면 굉장히 잔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줄 때는 언제고 조금씩 빼앗아가더니 결국에는 몽땅 다 다시 내어 놓으라니 놀부 심보도 이런 놀부 심보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에게선 조금 다른 점, 아니 많이 다른 점이 있습니다. 놀부는 그렇게 홀라당 빼앗고도 아무것도 돌려주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신실하시고 거짓이 없으시고, 사랑이 가득하신 그분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하시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내어놓는 그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내어주십니다. 아니, 꼭 죽는 순간만이 아니라 현세에서도 우리가 하나씩 하나씩 포기해나가는 자리자리마다 '영원한 생명'을 채워주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며 그래서 기뻐합니다. 이 충만한 행복감은 우리가 다른 무언가를 '소유'했을 때에 느끼는 것에 비할바가 되지 못합니다. 이 행복감은 우리의 가슴에서 솟아올라 우리를 가득 채워줍니다. 그리고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리고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우리의 경험이나 관찰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으로 고백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차이가 됩니다.
당신은 십자가와 그 부활을 믿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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