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여러분이 전혀 모르던 곳에 왔다.
하지만 다행이다, 손에 지도가 있다.
헌데 마냥 안심할 순 없는것이,
여러분이 지도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조금 더 높은 곳을 찾는 것이다.
급한 대로 가로수 위로 올라가 보던지,
어느 빌딩 옥상에 올라가 보던지,
아니면 근처 언덕 위로 올라가본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주변이 더 넓게 보이고,
지도의 어느 곳에 있는지를 파악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이 최종 목표지로 표시된 지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나침반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나침반은 눈 앞의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진 않는다.
우리는 선택을 하고,
다시 나침반을 보고,
지도의 방향에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때로는 담의 좌우로 갈라질 필요 없이,
담 자체를 넘기도 하고,
다리에 힘이 붙어서 가로수나 빌딩 혹은 언덕 위에 올라가 보기도 한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본 사람은 저 아래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지도와 나침반만 들고서 그들에게 백번을 조언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지금 눈 앞을 가로막은 벽이 문제이지 방향을 생각할 기력조차 없는 형편이다.
이정도 비유를 들었으면 알 법도 하지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먼저 사람들과 걸어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 그들에게 길을 알려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언자는 '진정한 죄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풀뿌리의 마음을 안다.
그들이 일상 안에서 마주하는 이들에게 가지는 증오와 시기심,
그리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마음과 심지어는 악을 저지를 수도 있을
그 마음들을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높이 있어서,
다른 이들의 근본 방향도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눈 앞에 닥친 문제보다는 근본 방향을 잊지 않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남쪽으로 아무리 장애물을 잘 넘어 뛰어가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저 지도만 들고,
나침반을 만지작 거리면서
왜 그쪽으로들 안가느냐고 빈정대는 부류들이 있다.
우리 주변의 '교만'한 이들이다.
헛똑똑이 들이고, 사랑을 이론만 파악한 이들이다.
진정한 사랑은 교만하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사랑,
그 울타리를 나간 양을 찾아 자신도 울타리를 나서는 사랑이다.
울타리를 나가지 않고서 잃은 양을 어디서 찾겠다는 말인지...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 많다.
누구는 울타리 안에서 양들 털이나 깎아 옷을 해 입고 젖이나 짜서 마셔대고 있고,
누구는 울타리 안에서 울타리 밖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돌아오라'고 외쳐 대기만 하고 있고,
누구는 울타리 점검이나 하고 있고,
누구는 울타리를 나가는 방법만 파고 있다.
그 가운데 양들을 찾아 울타리를 나서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혜 있는 자는 그를 '예언자'라 부르고,
울타리 안에 머무는 자들은 그를... '광인'이라 부른다.
아, 예수님도 당시에는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셨다.
아... 십자가 죽음도 그분의 몫이었다.
사람들은 바라빠를 구해 버렸다.
여러분이 전혀 모르던 곳에 왔다.
하지만 다행이다, 손에 지도가 있다.
헌데 마냥 안심할 순 없는것이,
여러분이 지도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조금 더 높은 곳을 찾는 것이다.
급한 대로 가로수 위로 올라가 보던지,
어느 빌딩 옥상에 올라가 보던지,
아니면 근처 언덕 위로 올라가본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주변이 더 넓게 보이고,
지도의 어느 곳에 있는지를 파악하기가 쉬워질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이 최종 목표지로 표시된 지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 있는 곳에서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교회라는 나침반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 나침반은 눈 앞의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진 않는다.
우리는 선택을 하고,
다시 나침반을 보고,
지도의 방향에 맞추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때로는 담의 좌우로 갈라질 필요 없이,
담 자체를 넘기도 하고,
다리에 힘이 붙어서 가로수나 빌딩 혹은 언덕 위에 올라가 보기도 한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본 사람은 저 아래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에게 조언을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지도와 나침반만 들고서 그들에게 백번을 조언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들은 지금 눈 앞을 가로막은 벽이 문제이지 방향을 생각할 기력조차 없는 형편이다.
이정도 비유를 들었으면 알 법도 하지만,
길을 알려주는 사람은,
먼저 사람들과 걸어봐야 한다.
그런 다음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 그들에게 길을 알려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예언자는 '진정한 죄인'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풀뿌리의 마음을 안다.
그들이 일상 안에서 마주하는 이들에게 가지는 증오와 시기심,
그리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마음과 심지어는 악을 저지를 수도 있을
그 마음들을 함께 나누고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높이 있어서,
다른 이들의 근본 방향도 바라보고 있다.
단순히 눈 앞에 닥친 문제보다는 근본 방향을 잊지 않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
북쪽으로 가야 하는데 남쪽으로 아무리 장애물을 잘 넘어 뛰어가봐야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저 지도만 들고,
나침반을 만지작 거리면서
왜 그쪽으로들 안가느냐고 빈정대는 부류들이 있다.
우리 주변의 '교만'한 이들이다.
헛똑똑이 들이고, 사랑을 이론만 파악한 이들이다.
진정한 사랑은 교만하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사랑,
그 울타리를 나간 양을 찾아 자신도 울타리를 나서는 사랑이다.
울타리를 나가지 않고서 잃은 양을 어디서 찾겠다는 말인지...
참으로 답답한 사람들이 많다.
누구는 울타리 안에서 양들 털이나 깎아 옷을 해 입고 젖이나 짜서 마셔대고 있고,
누구는 울타리 안에서 울타리 밖을 우두커니 바라보며 '돌아오라'고 외쳐 대기만 하고 있고,
누구는 울타리 점검이나 하고 있고,
누구는 울타리를 나가는 방법만 파고 있다.
그 가운데 양들을 찾아 울타리를 나서는 사람들이 있으니,
지혜 있는 자는 그를 '예언자'라 부르고,
울타리 안에 머무는 자들은 그를... '광인'이라 부른다.
아, 예수님도 당시에는 '미쳤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셨다.
아... 십자가 죽음도 그분의 몫이었다.
사람들은 바라빠를 구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