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점심때 '회' 한 사라 하고, 저녁에 '개'고기 먹으면 '회개'한다는 농담이 있다.
'회개'란 뭘까?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는 '미션'에 나오는 로버트 드니로의 회개 장면이다.
지난날의 자신의 과오를 상징하는 갑옷을 짊어지고는
이과수 폭포를 기어오르는 장면이다.
그리고 자신이 그 동안 박해하고 잡아 노예로 팔아온 원주민들이
그 갑옷이 묶인 끈을 끊을 때,
이 사람은 진정한 '해방'을 체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것이 회개라면...
과연 세상에 몇 명이나 '회개'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막연한 상상에서 벗어나서 본래의 주제로 돌아오자.
회개라는 것은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방향전환'이다.
세상 것들을 향한 나의 방향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회개'를 너무 쉽게 생각해서,
일회적이고 행사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리고 만다.
성인이 세례를 받으면 그걸로 회개했으니 되었다고 생각해 버리고,
판공이 다가와서 '고해성사' 받고 나면 되었다고 안심한다.
회개라는 방향전환의 진지함은
그런 외적인 틀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세례나 고해성사에서 드러나는 회개는
지난 날의 과오를 끊어 버리는 기초작업에 불과하다.
진정한 회개는 일상 안에서 삶으로 표현된다.
저녁이면 가족들이 모여 텔레비전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께 시간을 바쳐야 한다는 교회의 가르침을 안다.
당신은 어쩔 것인가?
우리의 '회개'는 단순한 말이나 의식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 삶 안에서 드러나게 된다.
회개는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는가를 반증하는 것이다.
말로는 천상교회의 신자가 될 수 있지만,
일상의 즐거움과 기도의 즐거움 사이의 양자 선택이나,
내가 필요하지도 않은 것을 사는 데 투자하는 것과
가난한 이를 위해 자선을 베푸는 품의 차이를 보면,
우리의 회개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사실 '미션'의 로버트 드니로 역시도 그 순간의 감동적이고 극적인 회개 이후에
수도자 형제들과의 삶 속에서 때로는 옛 삶으로 몇번이고 돌아갔을는지 모른다.
실상 우리의 '회개'는 일순간의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작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회개'의 순간이 아니라,
이루어진 '회개'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회개'는 찰나에 이루어지지만,
'회개의 여정'은 평생에 이어지는 것이다.
정말 로버트 드니로처럼 회개가 일순간에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이과수 폭포를 올라가도 해 볼 만한 것이 되겠지만,
실제의 회개는 보다 지루하고 매 순간의 도전을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