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훼방
원수는 언제나 우리의 선의에 훼방을 놓는다.
기도를 하려는 우리를 예를 들어보자.
먼저는 그 '첫 마음먹기'에서부터 훼방이 들어온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일상의 일은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이 하는 우리들이건만
기도는 그 시작부터 훼방이 들어온다.
머리로는 영으로는 '좋다'는 걸 알지만, 육이 거부하는 것이다.
어찌어찌 원수의 방어선을 뚫고 그 첫 마음을 먹고 기도에 들어간다고 치자.
늘 기도에 양다리를 걸치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즉, 기도를 한다면서 휴대폰을 끄지 않는다던지,
늘 찾아오는 사람을 마주하지 않은 방비책을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채로
기도에 들어가겠다는 건 기도하지 않겠다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가 원수의 이 두 번째 장벽도 넘어섰다.
기도하기 최적의 시간을 선택한다던지(새벽, 혹은 아무도 찾지 않는 시간),
적어도 기도 중에는 그 어떤 것들도 방해하지 않도록 환경을 마련해 두었다.
(휴대폰을 끈다던지, 홀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다던지)
하지만 이번엔 내면에서 적들이 공격해온다.
바로 '분심'이다.
우리의 기억창고는 뭐 그리도 잡다한 것들이 많은지,
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온다.
이 '분심'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비유가 있으니 들어보자.
한 사람이 밥을 먹는데 파리가 다가오면 어떻게 밥을 먹어야 할 것인가?
그저 손으로 휘휘 젖어서 파리가 입 속에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쫓으면 그만이다.
그 파리를 기어코 잡겠노라고 파리채를 들고 쫓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밥은 다 식어 버리고, 배고픈 생각도 사라져버리고 만다.
파리는 파리처럼 쫓아내고 먹어라.
하나에서 열까지 다 없애려 들지는 말아라.
이것이 분심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에게 분심이 일어나면,
'아 내가 다른 생각에 빠져 드는구나'하는 것을 깨닫고 다시 기도로 돌아오면 된다.
그러지 않고 왜 내가 분심을 할까 하는 한탄부터 시작해서
그 분심의 근원이 어디인지를 추적해 나가다 보면
결국 그 시간의 기도 동안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심리분석은 정신병원에 가서나 하고,
당신은 기도에 전념하라.
그 다음 단계는 '나도 모른다'.
한 사람이 기도에 전념하기 시작할 때에 얻어지는 열매들은 어렴풋이 성찰할 수 있지만,
과연 한 사람이 기도에 전념하는 동안의 그 시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나도 구체적으로 알 도리가 없다.
그저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약속하신 바를 이루실 것이다.
나를 믿고 내 말씀을 지키는 자는 아버지와 내가 함께 가서 그와 함께 머무를 것이라는 말씀.
잊지 않도록 하자.
하느님과 함께 사는 자는,
겁이 없고,
기쁘고,
평화스럽다.
(반대로 기도하지 않는 자는 겁(또는 걱정)이 많고, 기쁨이 없고, 불안해 한다.)
그런 고로...
기도합시다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