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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왕 대축일


그리스도왕 대축일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그 즉시 빌라도는 묻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진리가 뭘까요? 하하하하.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진리를 분별해야 할 세상의 심판관이
예수님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과연 무엇이 진리일까요?

진실과 진리는 유사한 말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진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 사건, 현상을 말하고,
진리는 올바른 이치를 말합니다.
이 묘한 차이를 이해할 때에 보다 예수님께 가까이 접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진실'의 예>
친구가 와서 내 사탕 하나를 빼앗아 먹었습니다.
나는 선생님께 이 일어난 일을 '진실'되이 알리고,
다시 친구가 가지고 있던 사탕 하나를 되받았습니다.

'진리'의 예>
친구가 와서 내 사탕 하나를 빼앗아 먹었습니다.
나는 지금 우는 이들은 행복하다는 예수님이 가르친 진리를 믿습니다.
그리고 나를 박해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라는 예수님의 진리도 믿기에
그 친구를 위해 기도합니다.
여전히 나는 사탕을 빼앗긴 그대로의 상태이지만
나는 내가 예수님의 진리 안에 머물고 있음을 압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진리' 속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했고,
여전히 '진리' 속에서 왕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자신의 왕을 지니고 있고,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실'인가 아닌가만 분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왕이 진리이고,
있는 놈은 위로 올라선다는 것은 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왕은 더할 나위 없이 낮은 자리에 계시고,
여전히 미사 가운데 '빵'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이 진리를 받아먹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오늘도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어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까요?
천주교 신자들은 넘쳐나는 것 같은데,
왜 세상은 여전히 어두움이 만연할까요?
진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진리에 속한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닐런지요?
'사랑'을 하는 사람이 부족한 건 아닐까요?

이런 저런 의문들이 이는 밤입니다.
오늘도 그런 이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분을 따라 죽으러 갑시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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