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세상을 구원하는 길
우리가 '머무르는' 이유는 더 잘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활동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가난한 이를 도와 주어야 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내면을 추스려야 한다.
막무가내로 해대는 일들은 '공허'에 빠지기 쉽다.
방향을 잘 잡고 한 걸음을 걷는 것이
방향을 틀어잡고 달려가는 것 보다 훨씬 나은 법이다.
'기도'와 '독서', 그리고 '묵상'은
그래서 소중하다.
예수님은 큰 일이 있기 전에 늘 홀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셨다.
이 '고독 속에 홀로 머뭄'은 막연한 공상에 빠져 흘러버리는 것과는 또 다르다.
어지러이 흘러가는 나의 사고들 속에서
하느님의 조명을 받아
보다 참되고 진실하고 거룩한 것을 선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렇게 골라낸 속이 알찬 씨앗을
'실천'으로 '삶'으로 심어 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행동주의자들이 곧잘 곁길로 빠져서
쓸데없는 공방을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내면이 공허한 채로 의욕과 실천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수난의 그날
가장 격동적이었고 마치 모든 세상이 뒤집힐 것 같았던 그날
예수님께서는 어린 양처럼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방향을 잃은 군중이 바라빠를 풀고 예수를 못박으라고 악을 써대던 그날의 어지러움을
어쩌면 우리는 오늘날 허울 좋은 변화라는 미명하에
반복을 해 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르긴해도 히틀러도 제 딴에는 세상을 구한답시고 나섰을 것이다.
그의 활동은 분명 눈으로 확 드러나는 것이었고,
세상이 바뀌기는 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그가 바랬던 '구원'은 도리어 수많은 이들의 '파국'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오늘 내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들을
묵묵히 처리하는 것이
진정 세상을 구원하는 일일수도 있다.
우리가 '머무르는' 이유는 더 잘 '움직이기' 위해서이다.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활동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가난한 이를 도와 주어야 하고,
그릇된 것을 바로 잡아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일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내면을 추스려야 한다.
막무가내로 해대는 일들은 '공허'에 빠지기 쉽다.
방향을 잘 잡고 한 걸음을 걷는 것이
방향을 틀어잡고 달려가는 것 보다 훨씬 나은 법이다.
'기도'와 '독서', 그리고 '묵상'은
그래서 소중하다.
예수님은 큰 일이 있기 전에 늘 홀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셨다.
이 '고독 속에 홀로 머뭄'은 막연한 공상에 빠져 흘러버리는 것과는 또 다르다.
어지러이 흘러가는 나의 사고들 속에서
하느님의 조명을 받아
보다 참되고 진실하고 거룩한 것을 선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렇게 골라낸 속이 알찬 씨앗을
'실천'으로 '삶'으로 심어 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행동주의자들이 곧잘 곁길로 빠져서
쓸데없는 공방을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내면이 공허한 채로 의욕과 실천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수난의 그날
가장 격동적이었고 마치 모든 세상이 뒤집힐 것 같았던 그날
예수님께서는 어린 양처럼 침묵을 지키고 계셨다.
방향을 잃은 군중이 바라빠를 풀고 예수를 못박으라고 악을 써대던 그날의 어지러움을
어쩌면 우리는 오늘날 허울 좋은 변화라는 미명하에
반복을 해 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르긴해도 히틀러도 제 딴에는 세상을 구한답시고 나섰을 것이다.
그의 활동은 분명 눈으로 확 드러나는 것이었고,
세상이 바뀌기는 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그가 바랬던 '구원'은 도리어 수많은 이들의 '파국'이 되어 버렸다.
어쩌면,
오늘 내 자리에서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일들을
묵묵히 처리하는 것이
진정 세상을 구원하는 일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