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매일미사 연중 34주 금요일 복음을 읽고 미사에 들어갔다가
오늘이 안드레아 축일이라 복음이 달라져 있는 걸
미사 직전까지 몰랐다.
살짝 당황했음. ㅎㅎㅎ
제자들을 부르는 모습을 담은 복음인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들이 원하는 게 있을 때에는 그 기회를 잡습니다.
늘 좋은 음식을 찾는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다가
좋은 음식을 파는 곳을 알게 되면 거기에 가려고 기를 쓰죠.
좋은 향수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내의 모든 향수가게를 뒤져 자신이 찾던 향수가 있으면
기어코 사고 말지요.
오늘 복음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일상적인 생활을 늘 유지하고 있었지만
늘 마음 속에 뭔가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배도, 그물도,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족도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가 예수님을 얻어만나 그분의 부르심을 듣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세상과 하느님 사이의 선택에서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아주 엉망인 남편과 사는 아내가 있습니다.
늘 술에 취하고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세상의 논리 대로라면 당장 헤어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아내의 마음 속에 '하느님에 대한 열정'을 품고
이 남편을 인내하고 살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 아내는 남편으로 인해 자신의 성화의 길을 걷는 셈입니다.
굳이 이런 심한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안에서 아주 자잘한 것부터 세상과 하느님 사이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느 택시 운전수는 손님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 오다가
이제는 손님들을 '예수님 모시듯이' 합니다.
이전까지는 옷차림이 남루하고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들이 진정한 손님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들 가운데 계신다고 했으니까요.
부르심은 우리의 삶의 외면을 180도 뒤바꿔 놓는 게 아닙니다.
복음의 제자들도 이전에는 생선을 잡는 어부에서 이제는 사람을 잡는 어부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마음으로 하는 가에 달린 거지요.
여러분의 일상 안에서 주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십시오.
여러분의 가족들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느님에게서 멀리 있는 가족을 하느님께로 이끌 때에
여러분은 그 영혼을 얻게 되고
훗날 하느님 대전 앞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바로선 사람은 하루 1 시간을 일해도 의미있는 일을 하고,
반대로 마음이 없는 사람은 24시간을 죽도록 고생을 해도 허무합니다.
저와 함께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아멘."
역시... 강론은 내가 하는 게 아닌거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나는 정말이지 하찮고 초라한 죄인일 뿐이다.
주님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
오늘이 안드레아 축일이라 복음이 달라져 있는 걸
미사 직전까지 몰랐다.
살짝 당황했음. ㅎㅎㅎ
제자들을 부르는 모습을 담은 복음인데,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리들이 원하는 게 있을 때에는 그 기회를 잡습니다.
늘 좋은 음식을 찾는 사람이 일상을 살아가다가
좋은 음식을 파는 곳을 알게 되면 거기에 가려고 기를 쓰죠.
좋은 향수를 찾아다니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내의 모든 향수가게를 뒤져 자신이 찾던 향수가 있으면
기어코 사고 말지요.
오늘 복음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일상적인 생활을 늘 유지하고 있었지만
늘 마음 속에 뭔가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배도, 그물도,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족도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가 예수님을 얻어만나 그분의 부르심을 듣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부르심입니다.
이 부르심은 세상과 하느님 사이의 선택에서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아주 엉망인 남편과 사는 아내가 있습니다.
늘 술에 취하고 삶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세상의 논리 대로라면 당장 헤어지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 아내의 마음 속에 '하느님에 대한 열정'을 품고
이 남편을 인내하고 살겠다는 결심을 세우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이 아내는 남편으로 인해 자신의 성화의 길을 걷는 셈입니다.
굳이 이런 심한 예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안에서 아주 자잘한 것부터 세상과 하느님 사이의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느 택시 운전수는 손님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해 오다가
이제는 손님들을 '예수님 모시듯이' 합니다.
이전까지는 옷차림이 남루하고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무시하고 지나쳤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들이 진정한 손님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들 가운데 계신다고 했으니까요.
부르심은 우리의 삶의 외면을 180도 뒤바꿔 놓는 게 아닙니다.
복음의 제자들도 이전에는 생선을 잡는 어부에서 이제는 사람을 잡는 어부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똑같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마음으로 하는 가에 달린 거지요.
여러분의 일상 안에서 주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십시오.
여러분의 가족들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느님에게서 멀리 있는 가족을 하느님께로 이끌 때에
여러분은 그 영혼을 얻게 되고
훗날 하느님 대전 앞에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바로선 사람은 하루 1 시간을 일해도 의미있는 일을 하고,
반대로 마음이 없는 사람은 24시간을 죽도록 고생을 해도 허무합니다.
저와 함께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아멘."
역시... 강론은 내가 하는 게 아닌거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
나는 정말이지 하찮고 초라한 죄인일 뿐이다.
주님 저희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