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행
고통에 대해서는 얼마간 배웠습니다. 헌데 '고행'은 무엇일까요? 고행은 자신의 죄의 보속이나 또는 거룩한 목적으로 고통을 참아받는 행위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아직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부분이라 아마 제가 하는 말들이 큰 의미를 갖지 못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오늘날 육을 섬기는 이 시대의 풍조 안에서 고행은 때로는 어리석게 비춰지는 심지어는 '광신'으로 비춰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학사조 안에서는 얀세니즘으로 분류되며 막연히 멀리해야 하는 것으로 신학교 안에서 배운 것이 저의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사실 어쩌면 저를 가르친 분들 가운데에는 아예 그런 쪽에 관심이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날의 신앙 사조는 영과 육의 고른 성장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영의 성장을 제대로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결국 그들은 온갖 좋은 것들로 육을 꾸미고 가꿀줄은 알지만 영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영에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자연스럽게 점점 더 열리게 되는 시야는 '육을 다스림'이라는 영역입니다. 우리의 육은 마치 갓난아기와 같아서 끊임없이 영에게 보살핌을 요구합니다. 관심을 좀 가져 달라고 떼를 쓰는 어린이와도 같습니다. 이런 어린 아이의 요구를 곧이 곧대로 들어주다가는 결국 영의 본래의 목적인 하느님을 향한 사랑에는 전혀 나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을 다스려야 합니다. 물론 그 구체적인 방법은 뭐라 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육의 욕구를 제어할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고행은 타인의 눈에는 전혀 띄지 않아야 하고 오로지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어야 합니다. 타인의 눈에 고행이 드러나는 순간 우리는 이미 받을 상을 다 받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