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집, 강도의 소굴
(연중 33주 금요일)
기도의 집은 기도의 장소이고, 우리들이 머무는 가정입니다.
강도의 소굴은 약탈하는 곳이고, 두목과 졸개들이 있는 곳입니다.
'성전'은 기도의 집이지 강도의 소굴이 아닙니다.
헌데 오늘 예수님은 그 안의 상인들을 '쫓아내시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상냥한 모습, 죄인들을 감싸는 모습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평소의 말씀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 해석에 관한 우리의 모든 작업은
예수님을 향한 무한한 신뢰에서 시작이 됩니다.
'분명 예수님은 이유가 있으셨을거야'라는 생각과
그것을 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성경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성경 안에서 모순된 구절을 찾기 시작하면
하나에서 열까지 모순과 비논리성 뿐입니다.
예수님은 모두를 반겼을까?
아닙니다. 예수님도 분명한 선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무너져 있는 이들을 한없는 애정으로 바라보셨지만,
스스로를 의롭다고 생각하고 남을 심판하는 이에게는 매정함을 보이셨습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돼지떼가 죽는 걸 묵인하신 걸로 봐도,
'동물사랑협회'에서도 그리 반갑게 맞이할 인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의 오늘의 일화에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기도하는 집에서 '장사하려는 이들'을 얼마나 질색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외적인 죄인들(창녀, 세리, 병자, 나환자들)은 사정없이 반기셨지만,
겉은 번지르르한 채로 내적으로 썩어 들어간 죄인들에겐 일침을 가하셨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오도록 합시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강도의 소굴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세상 안에서 눈에 드러나는 '성전'도 중요합니다.
성전은 교회 공동체가 기도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성전에서 장사하려는 생각을 잔뜩 지닌 이들이 머물게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사제는 사람들 사이에 그런 생각이 깃들지 않게 주의해야 합니다.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은 우리의 구원을 앞당기는 근본 목적으로 이루어져야하지
단순히 성당의 재정을 불리거나,
사람들의 호기심과 기호를 충족 시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나아가 또 하나의 잊지 말아야 할 성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머무시는 곳, 하느님의 안식처가 되어야 하고,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기도하는 이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악당과 그 졸개들이 머무는 곳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온갖 세속적인 생각들, 육신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내버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좋은 몸, 아름다운 몸매, 이쁜 얼굴을 가꾸는 데는 수시간씩 투자를 하고,
그 내면의 진정한 주인인 '영혼'을 가꾸는 일은 소홀히 한다거나,
'탐욕, 명예욕, 권력욕'이 활개치게 내버려두고
천상의 가치들인 '믿음, 사랑, 소망'이나 '인내, 절제, 경건'등등을 소홀히 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성전을 정화해야 합니다.
마치 군중이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자 모여든 것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할 때에,
우리의 모든 지체와 욕구들마저 하느님께 더 나아가려고 함께 모여들 것입니다.
기도 안에 머무르시고, 그 안에서 기쁨을 찾으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