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네 마음에 달려 있어.
누군가에게 이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리고 그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겁이 났고 두려웠다.
난 장님이었고, 볼 줄을 몰랐다.
변함 없는 분은 변함이 없거늘,
나는 늘상 변화하는 내 마음에 따라 변덕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걸 해야 마음에 들까? 저걸 해야 마음에 들까?
실상 있는 나 그 자체로 사랑하는 분이었는데,
매 순간마다 나는 이런 저런 방향으로 생각을 바꾸어가며
결국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조정하려고 하고 있었다.
참 어리석고 이기적이었다.
이제 이 말뜻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모든 건 내 마음에 달려 있다'
하느님은 영원하신 분이시고
우리는 그분에게 우리의 마음을, 의지를 선물하면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쉬면 된다.
우리의 마음이 '육의 요구'에 민감해져서
겁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행여 굶주릴까봐, 행여 더울까봐, 행여 추울까봐,
행여 불편할까봐...
이 육을 길들이고 어떤 것이든지 달게 받겠다는 마음으로 실천하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육의 요구'에서 들어높일 수 있다.
'정신'적인 영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니,
우리는 진정한 기쁨이 아니라,
감정적 쾌락에 길들여져 있는 상황이다.
슬픔의 감정은 무턱대고 피하려고만 들고
기쁨의 감정만 추구하다보니
이런 저런 '오락거리'들에 서서히 중독되어가는 중이다.
때로는 고독과 정면대결 하기도 해야 하고,
우울함이나 슬픔의 근원을 파고들어 보기도 해야 하는 법이다.
모든 건 우리 마음에 달려 있다는 그 누군가의 충고는
아주 조금씩 그 이해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자연재해 앞에서나 가능한 말이고,
사실 따지고 보면 어쩔 수 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바는,
영적인 사정들을 다루어보는 것이다.
이제사 겨우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이기에
이를 다룬다는 것은 아직 소원한 일이긴 하지만,
두 가지만 뚜렷하게 바라볼 줄 알면 시작점은 생기는 것이다.
선의와 악의... 악의는 과감히 물리치고 선의를 살려나가는 노력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