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더 왕성히 활동하니 빛을 비추는 측에서도 더 열심히 해야지요. 그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일이니까요. 어둠은 싸우게 만들고 빛은 사랑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일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쉴 생각만 해서 되겠습니까? 관상생활의 우아함이라구요? 참나... 그건 도대체 어디서 나온 믿음이랍니까? 관상생활이 우아하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사람이 관상에 접어들기까지의 모든 과정은 일순간에 무시하고 '조용하게 수도원이나 들어가고 싶다'라구요? 수도원이 생각처럼 조용한 곳인줄 아십니까? 아마 들어가보면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멋대로 상상하는 수도원은 발리의 해변가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이 오히려 더 가깝습니다. 거기서는 별달리 할 일도 없고 휴가 기간 동안 먹고 쉬고 관광하면 되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삶을 휴가를 위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학교'입니다. 기회가 되는 동안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나중에 그것을 써먹어야 하는 것이지요. 헌데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요? 자신이 대학 교수라고, 전문 직업인이라고 이미 충분히 배웠다고 착각하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가장 배우지 못한 이들입니다. 인생이라는 것에는 겉으로 내세울 수 있는 스펙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실제의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엄청나게 더 풍부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셈입니다. 대학원 박사 과정을 따고서도 그 교만 때문에 내 가족 하나 올바로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의 그 스펙이 무슨 소용이랍니까? 차라리 겸손하고 우직하게 제 할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일치를 꾀하는 시골 노인이 더 지혜로운 법입니다.
통상적으로 가톨릭의 성직자(거룩한 직분을 받은 자)를 신부님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의 목회자(회중을 사목하는 자)를 목사님이라고 부릅니다. 당연히 이를 올바로 구별하기 위해서는 가톨릭(또는 천주교)과 개신교의 차이를 알아야 하겠지요? 기독교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의 한자 음역을 한 단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통상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말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천주교(가톨릭: 보편적)과 개신교(프로테스탄트: 저항)로 표기하는 것이 맞습니다. 먼저는 예수님입니다. 2000여년 전 인류사에서 한 인물이 등장을 했고 엄청난 이슈를 남기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를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소위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그 덩치를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덩치가 커지니 만큼 순수했던 처음의 열정이 사라져가고 온갖 사람들이 그 안에 들어서게 되지요. 그리고 엉뚱한 움직임들이 많이 등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많은 모습들이 보이게 되었지요. 돈에 대한 탐욕, 권력에 대한 집착과 같은 움직임들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등장하게 되지요. 그것이 바로 개신교의 시초인 셈입니다. 루터라는 인물이 95개조의 반박문을 쓰고 했다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들고 갈려 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총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 가톨릭에서 갈려 나와 자신들이 진정한 초대교회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톨릭은 여전히 가톨릭대로 자신들이 정통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고 있는 상황이 펼쳐지게 됩니다. 우리의 몸이 때로는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몸이 아프다고 해서 성한 팔을 따로 잘라내지는 않는 것처럼 공동체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공동체가 아프면 모두 힘을 모아서 그 아픈 부위...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