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 도착을 했습니다. 이 동네는 늘 관을 열어두고 관에 달린 유리를 통해서 망자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 관으로 가서 망자에게 성호를 그어 주었습니다. 시신 처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망자의 얼굴에 작은 날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예식을 시작하는데 사람들이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 가톨릭 신자들 맞아요?
가톨릭 신자가 맞답니다. 다만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가톨릭 신자가 성호경을 긋는데 연습이 필요하다니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모르는 척 강론을 시작했습니다.
- 좋습니다. 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우리가 이 자리에 와 있는 이유는 분명하니까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영혼’이라는 것이 남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이 상황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고 나면 영혼이 남는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영혼에 무게가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꼬마가 물건을 훔치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 묵직한 무게감을 느낍니다. 바로 그것이 영혼의 무게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준 이 콜라를 보십시오. 컵이 사라지고 나면 콜라는 바닥에 떨어지게 됩니다. 컵은 콜라를 받치고 있지요. 반대로 이 컵 안에 가벼운 공기가 있다면 그것을 막고 있는 뚜껑이 사라지면 위로 올라갈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이와 같이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영혼의 무게는 ‘죄악’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술에 쩔어 사는 사람,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 거짓말을 교묘히 하고, 돈욕심만 잔뜩 내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이들은 죽음이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여기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망자는 아무것도 지니고 가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육신도 내려놓고 가지요. 헌데 우리는 왜 그렇게 더 가지려고 안달이란 말입니까? 우리의 영혼을 돌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왜 그리 탐욕에 젖어 사는 걸까요?
저 젊은이도(망자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는 몰랐습니다. 우리도 나름의 계획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는 시기에 그 영혼의 운명을 끊어 버리십니다.
스스로 성찰해 보십시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말이지요. 당신의 육신입니까? 당신의 영혼입니까?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
사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말들을 했지만 대부분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린 것들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 가톨릭 신자들 맞아요?
가톨릭 신자가 맞답니다. 다만 ‘연습’을 많이 하지 않아서 그렇답니다. 가톨릭 신자가 성호경을 긋는데 연습이 필요하다니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모르는 척 강론을 시작했습니다.
- 좋습니다. 가톨릭 신자건 아니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우리가 이 자리에 와 있는 이유는 분명하니까요. 우리는 선천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영혼’이라는 것이 남는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여기 와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이 상황은 우스꽝스러운 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고 나면 영혼이 남는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가는 것이지요. 영혼에 무게가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꼬마가 물건을 훔치고 나면 마음 깊은 곳에 묵직한 무게감을 느낍니다. 바로 그것이 영혼의 무게입니다. 여러분이 저에게 준 이 콜라를 보십시오. 컵이 사라지고 나면 콜라는 바닥에 떨어지게 됩니다. 컵은 콜라를 받치고 있지요. 반대로 이 컵 안에 가벼운 공기가 있다면 그것을 막고 있는 뚜껑이 사라지면 위로 올라갈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이와 같이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가게 됩니다.
영혼의 무게는 ‘죄악’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술에 쩔어 사는 사람, 아내를 구타하는 사람, 거짓말을 교묘히 하고, 돈욕심만 잔뜩 내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이들은 죽음이 지나고 나면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자신에게 소속된 곳으로 돌아가게 되지요.
여기 증거가 있지 않습니까? 망자는 아무것도 지니고 가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육신도 내려놓고 가지요. 헌데 우리는 왜 그렇게 더 가지려고 안달이란 말입니까? 우리의 영혼을 돌볼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왜 그리 탐욕에 젖어 사는 걸까요?
저 젊은이도(망자는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는 몰랐습니다. 우리도 나름의 계획을 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만이 아는 시기에 그 영혼의 운명을 끊어 버리십니다.
스스로 성찰해 보십시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말이지요. 당신의 육신입니까? 당신의 영혼입니까? 살아있는 동안 하느님을 만날 준비를 잘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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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말들을 했지만 대부분 여러분들에게 알려 드린 것들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도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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