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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표

https://www.youtube.com/watch?v=fTv8tNjHi1c

수요일 7시였다. 아들의 학교에 정각에 도착했다.

- 모임에 나오는 것 잊지 마세요. 의무사항이에요.

아이의 공책에 선생님이 쓰신 글이었다.

- 제길, 선생님은 뭘 생각하는거야? 선생님이 말하는 시간에 우리가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8시 반에 가진 모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더라면 그러지 못했을텐데, 엄청 중요한 계약 자리였는데, 취소해야 했다구!

모임 자리에는 엄마와 아빠 모두 나와 있었다. 선생님은 정시에 시작해서 우리가 참석해 준 것에 고마워하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난 이 계약을 어떻게 해결할까를 생각한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번 계약으로 받게 될 돈으로 새로운 텔레비전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 후안 로드리게즈!

그때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 후안 로드리게즈 아버님 안계신가요?

라고 선생님이 말했다.

- 네, 네, 여기 있어요.

급하게 대답하면서 아들의 성적표를 받으러 나아갔다. 의자로 돌아와서는 받아든 걸 보았다.

- 내가 이것 때문에 여기 온거야? 대체 이건 뭐...?

성적표를 얼른 집어 넣어야 했다. 다른 이들이 엉망 진창인 내 아들의 성적표를 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을 하면 할수록 화가 더 나기 시작했다.

- 다 주잖아!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잖아! 이제 아들내미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군!

도착해서 집으로 들어갔다. 문을 쾅 닫고는 고함을 질렀다.

- 후안 이리 나와!!!

후안은 자기 방에 있었다. 그리고 나를 포옹하러 달려나왔다.

- 아빠 도착했구나!!!

- 무슨 아빠 같은 소리야? 빌어먹을 자식!

애를 떨쳐버리고 허리에 벨트를 풀어서 몇차례나 아이를 때렸는지 모른다. 때리면서 아들놈에 대해서 생각한 걸 고함을 질렀다.

- 이놈! 이놈! 이놈!!!! 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야. 멍청한 자식! 소용도 없고 쓸모도 없어! 아주 부끄러워 죽겠구만!!!!

후안은 울면서 돌아갔다. 눈물을 뚝뚝 흘렀고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고 입술은 떨리고 있었다. 아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그 자리를 떠나갔다.

잠자리에 들러 갔을 때, 나는 이미 진정되어 있었다. 아내는 내 자켓에 있던 후안의 성적표를 내게 다시 들고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 천천히 읽어보고 난 뒤에 결정을 하세요.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아빠에 대한 성적표
1. 잠자는 시간에 아들과 이야기하는데 보낸 시간 2점
2. 아들과 노는데 보낸 시간 2점
3. 숙제 도와주는데 보낸 시간 3점
4. 가족과 소풍가는데 보낸 시간 2점
5. 자기 전에 동화 들려주는데 보낸 시간 2점
6. 함께 텔레비전 보는데 보낸 시간 3점
7. 껴안꼬 뽀뽀해주는데 보낸 시간 2점

나란 인간은...

난 일어나서 아들의 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를 안고는 엉엉 울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불가능했다.

후아니또(후안의 애칭)는 눈을 떴다.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아직도 눈이 부어 있었다. 나를 향해 웃어 주었다. 나를 껴안고는 나에게 속삭였다.

- 아빠 사랑해. 엄청 사랑해.

아이는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스페인어 원문)

Nosotros Y Nuestros Hijos


Para reflexionar en familia: 

Era miércoles, 8:00 a.m., llegué puntual a la escuela de mi hijo.
- No olviden venir a la reunión, es obligatoria - fue lo que la maestra escribió en el cuaderno del niño.
- ¡Pues qué cree la maestra! ¿Cree que podemos disponer del tiempo a la hora que ella diga? Si supiera qué importante era la reunión que tenía a las 8:30 a.m., de aquí dependía un buen negocio y... ¡tuve que cancelarla!...
Ahí estábamos todos, papás y mamás, la maestra empezó puntual, agradeció nuestra presencia y empezó a hablar.
No recuerdo qué dijo, mi mente estaba pensando cómo resolver lo de ése negocio, probablemente podríamos comprar una nueva televisión con el dinero que recibiría.
- Juan Rodríguez!... escuché a lo lejos. ¿No está el papá de Juan Rodríguez? dijo la maestra.
- Sí, sí, aquí estoy!! contesté pasando a recibir la boleta de mi hijo. Regresé a mi silla y me dispuse a verla.
- ¿Para esto vine? ¿Qué es esto?...
La boleta estaba llena de seis y sietes. Guardé las calificaciones inmediatamente, escondiéndola para que ninguna persona viera las porquerías de calificaciones de mi hijo.
De regreso a la casa aumentó más mi coraje a la vez que pensaba...., ¡si le doy todo! ¡Nada le falta ¡Ahora sí le va a ir muy mal!...
Me estacioné y salí del carro, entré a la casa, tiré la puerta y grité: Ven acá Juan!!!
Juan estaba en su recámara y corrió a abrazarme. - ¡Papi!...
- ¡Qué papi, ni que nada!- Lo retiré de mí, me quité el cinturón y lo castigué dos veces, al mismo tiempo que decía lo que pensaba de él. ¡¡¡¡ Y te me vas a tu cuarto!!! - terminé.
Juan se fue llorando, su cara estaba roja y su boca temblaba.
Mi esposa no dijo nada, solo movió la cabeza negativamente y se fue...
Cuando me fui a acostar, ya más tranquilo, mi esposa me entregó otra vez la libreta de calificaciones de Juan, que estaba dentro de mi saco y me dijo: Léela despacio y después toma tu decisión...
Ésta decía así:

Boleta de calificaciones para el papá:

TIEMPO QUE LE DEDICA A SU HIJOCALIFICACIÓN
1. En conversar con él a la hora de dormir.6
2. En jugar con él.6
3. En ayudarlo a hacer la tarea.7
4. En salir de paseo en Familia.6
5. En contarle un cuento antes de dormir.6
6. En abrazarlo y besarlo.6
7. En ver la televisión con él.7
Él me había puesto seis y sietes, a mí!!! Yo me hubiese calificado con menos de cinco...
Me levanté y corrí a la habitación de mi hijo, lo abracé y lloré...Quería regresar el tiempo, pero era imposible...
Juanito abrió sus ojos, aún estaban hinchados por sus lágrimas, me sonrió, me abrazó y me dijo: ¡te quiero papi! Cerró sus ojos y se durmió.
¡Que duro es ver nuestros errores como padres desde esta perspectiva!....
Démosle el VALOR a lo que realmente es de valor para nosotros: Nuestra familia!!!
Hay muchas personas que desean un hijo y no lo tienen. Dios te dio una familia, apreciala, amala, comprendela.
El día de mañana el Señor te pedirá cuentas por tu familia y ¿qué le vas a conte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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