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라는 것을 알기 쉽게 설명하면 ‘위로부터의 내려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로에 갇힌 사람에게 위로부터 내려다보면서 필요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지요. 미로에 갇힌 사람은 자신이 어디쯤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위로부터의 지혜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통상적으로 그런 이들은 자신들이 미로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자존심이 스스로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리지요.
분명 미로에 갇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르기에 답답함은 느끼지만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이의 지시를 받기도 싫어합니다. 그런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은 결국 자신의 미로 안에 스스로 갇히기를 선택하는 거지요. 분명 행복하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육적인 행복, 즉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진정한 행복은 여전히 요원한데 그들은 자신들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삽니다. 그러나 결코 만족이 될 수가 없지요. 뼈끝까지 파고들어 있는 공허를 어찌할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기에 더욱 더 쾌락에 파고들지요. 그렇게 그들은 쾌락에 중독이 되어갑니다. 세상의 정보와 향락에 점점 더 중독되어 가지요. 그리고는 아예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기에 이릅니다.
그러는 동안 지혜로운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말을 이해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 헤메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길을 알려 주지요. 그렇게 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들이 더 많은 영혼들을 앗아갑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쓸 수 있다면, 우리가 조금만 더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올바로 깨닫고 빛을 찾아 나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우리의 중독 상태가 너무나 짙어서 큰일입니다. 거기에 자존심까지 있으니 이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셈이지요.
분명 미로에 갇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모르기에 답답함은 느끼지만 위로부터 내려다보는 이의 지시를 받기도 싫어합니다. 그런 모순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은 결국 자신의 미로 안에 스스로 갇히기를 선택하는 거지요. 분명 행복하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만족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을 추구합니다. 육적인 행복, 즉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진정한 행복은 여전히 요원한데 그들은 자신들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삽니다. 그러나 결코 만족이 될 수가 없지요. 뼈끝까지 파고들어 있는 공허를 어찌할 방법이 없는 셈입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기에 더욱 더 쾌락에 파고들지요. 그렇게 그들은 쾌락에 중독이 되어갑니다. 세상의 정보와 향락에 점점 더 중독되어 가지요. 그리고는 아예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기에 이릅니다.
그러는 동안 지혜로운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말을 이해할 만한 사람들을 찾아 헤메고 다닙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길을 알려 주지요. 그렇게 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어둠의 세력들이 더 많은 영혼들을 앗아갑니다. 우리가 조금만 마음을 쓸 수 있다면, 우리가 조금만 더 마음을 열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올바로 깨닫고 빛을 찾아 나서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우리의 중독 상태가 너무나 짙어서 큰일입니다. 거기에 자존심까지 있으니 이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셈이지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