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을 하는 게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방황에 머무르는 건 잘못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선택을 하기에 앞서 이런 저런 것들을 재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방황하는 시간 동안 ‘기회’들이 흘러갑니다. 그 안에 온갖 좋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우리의 방황 동안 공허하게 흘러가는 셈이지요.
우리가 어떤 좋은 핸드백을 살까 고민하는 중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좋은 일,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흘러갑니다. 헌데도 우리는 그러한 세상의 고민에서 깨어나 다시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잠시 뉘우치고는 머지 않아 다시 세상의 고민에 접어들고 맙니다.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고민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헛된 것에다 잔뜩 쏟고 나면 당연히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지독한 ‘공허’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 있는 공허를 지울 수가 없지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앞에 두고 우리는 그야말로 나날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고 삽니다. 그러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차라리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최악인 셈이지요.
방황은 절대로 멈춰 있는 게 아닙니다. 방황은 시간의 상실이고 기회의 상실입니다. 우리는 더 좋은 일을 위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좋은 핸드백을 살까 고민하는 중에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좋은 일,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흘러갑니다. 헌데도 우리는 그러한 세상의 고민에서 깨어나 다시 하느님을 바라보면서 잠시 뉘우치고는 머지 않아 다시 세상의 고민에 접어들고 맙니다.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고민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헛된 것에다 잔뜩 쏟고 나면 당연히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은 지독한 ‘공허’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정말 바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마음 속에 있는 공허를 지울 수가 없지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앞에 두고 우리는 그야말로 나날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걱정하고 삽니다. 그러니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차라리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최악인 셈이지요.
방황은 절대로 멈춰 있는 게 아닙니다. 방황은 시간의 상실이고 기회의 상실입니다. 우리는 더 좋은 일을 위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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