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는 노기를 띠시고 그들을 둘러보셨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르 3,5)
우리는 어떤 상황 앞에서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노의 출처는 다양합니다. 어떤 분노는 이기적인 분노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손해가 갈 때에는 느끼지 못하다가 나 자신에게 손해가 갈 때에 느끼는 것이 이기적인 분노입니다. 하지만 ‘의로운 분노’가 있으니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 느끼시는 분노입니다.
하느님도 때로는 분노하십니다. 당신이 정하신 길을 따르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들 앞에서, 당신의 자비를 철저히 무시하는 인간들 앞에서, 당신이 내미는 손을 자꾸만 뿌리치는 인간들 앞에서 분노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쌓여진 분노는 결국 그 분노를 쌓아올린 이에게 쏟아지게 됩니다.
“주님께서 그를 용서하려 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히려 그에 대한 주님의 진노와 질투가 타올라 이 책에 쓰인 모든 저주가 그 위에 내리고, 주님께서 그의 이름을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리실 것이다.”(신명 29,19)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하느님의 진노와는 달리 ‘사랑’이라는 사명을 지니고 오셨기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그것은 바로 ‘슬퍼함’입니다. 그들의 마음의 완고함 앞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진노대로 심판하시지 않고 슬퍼하십니다. 왜냐하면 최종 심판은 하느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 분노의 출처를 올바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이기심에서 나오는 분노인지 아니면 거룩한 분의 뜻에서 기인하는 분노인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분노 앞에서 그들의 영혼에 대해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복수를 다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 안에서 ‘이미’ 심판을 스스로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전능하시고 선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의 자비에 그들을 맡기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아마 이 마지막 권고는 적지 않은 이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 안에서 뭐든 개선되어야 한다고 믿는 그들은 영원하신 분의 섭리를 믿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세상 안에서 선하게 살다가 억울하게 죽는 모습을 많이 관찰할 수 있습니다. 또 반대의 경우에는 악한 사람이지만 떵떵거리며 살고 부유하게 살다가 호화롭게 죽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요. 그러나 영원 안에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한 이들은 모두 제 몫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악한 이들은 결국 그만큼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유일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사랑에로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셨지만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그분의 삶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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