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사제상은 과거의 사제상으로부터 생명력을 이어받고 또 미래의 사제상에 영향을 주게 된다. 따라서 현재의 사제상을 올바로 바라보게 되면 과거의 사제들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고, 또 다가올 미래의 사제들이 어떠할지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의 사제는 과연 어떠한가? 여전히 독선적이고 아집에 사로잡혀 있으며 교만한 모습이 보인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차마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못하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다른 한 편, 그 사제상을 깨닫고 전혀 새로운 사제상을 준비하는 이들도 보인다. 겸손하고 포용적이며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과연 미래의 사제상은 어떠할 것인가? 아직은 희망은 있다. 많은 젊은이들은 새로운 시대상에 부합하여 성장하고 있으며 여전히 영적 요구는 높다.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사제들이 양성될 것이고 배출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위험은 상존한다. 기본적인 사제 성소자의 숫자는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고 머지 않아 신앙은 그 자체로 화석화 될 수도 있다. 지금은 여전히 외적인 신앙 형식의 준수가 요구되고 일상화되어 있어서 미사에 의무적으로라도 참석하는 이들이 성당을 채우고 있지만 앞으로 영적인 양식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그나마 ‘의무’로 유지되고 있는 이 외적 형식도 메말라버릴 가능성이 높다. 사람들이 없는 적적한 성당에는 젊은이들이 갈 이유가 없으며, 자신들이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하지 못한 삶의 방식을 젊은이들이 쫓아갈 이유도 없다. 그렇게 성소는 서서히 메말라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사제들에게 달린 문제이다. 사제들이 희망을 주고 충만함을 주고 사랑을 베푸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뜨거운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은 교회를 찾아올 것이고 서로 사랑하고 주님의 길을 배워 나가면서 성소를 다져나가게 될 것이다.
성령의 불을 지펴야 하고 내적인 성전을 새로이 새울 줄 알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한국 교회의 재건을 위한 주제가 아니라 전 세계교회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당신이 세운 교회를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며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도움을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그 도움의 손길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인가,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한 다른 이들에 의해서 새로이 시작될 것인가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의지적 봉헌에 달린 문제이다. 이미 교회의 일원인 우리들은 하느님에게 우리의 의지를 봉헌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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