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요한 6,63)
어떤 아버지가 아들 생일날이 되어서 백화점에 가서 가장 비싼 선물을 샀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에게 던지듯이 선물을 주고는 ‘그거 제일 비싼 거다’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아이는 이런 선물을 원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다만 아버지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을 뿐입니다. 이 아버지는 육적인 선물만을 줄 줄 알았지 영을 보살피지 못한 셈입니다.
우리가 하는 신앙생활은 ‘영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모든 육적인 것을 무시하고 영적인 것에만 집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앞의 비유로 돌아와 봅시다.
어떤 아버지가 영적으로 자녀를 사랑할 줄 아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생일날이 다가오면서 아들에게 미리 다가가서 평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봅니다. 아들은 평소에 늘 하던 대화이기에 스스럼없이 대답을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것을 기억 속에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생일이 되어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특별한 날을 준비합니다. 아들이 평소에 좋아하던 물건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초대하고 이런 저런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려 집에 들어서는 아들을 꼭 안아줍니다. 물론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말이지요.
영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육으로 두 배의 열심으로 사랑을 표현합니다. 반면 육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거래를 하지요. 만일 전자의 아버지가 아들이 반항하는 모습을 보면 당장에 생각을 할 것입니다.
‘아니, 내가 백화점에서 가장 비싼 선물을 줬는데(나는 아들에게 값을 지불했는데), 나에게 이렇게 대하는거야?(아들은 나에게 이런 상품을 판매하는 거야?)’
아버지의 생각은 거래일 뿐입니다. 사랑이 아니지요.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당신을 온전히 내어 놓으셨고 여전히 내어놓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도 모든 것을 다 쏟아서 그분을 돕고 있지요. 우리는 영으로 하나인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영은 생명을 줍니다. 하지만 육은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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