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요한 15,5-6)
포도나무는 먹을 수 있는 포도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가지가 굵고 가늘고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열매가 열려야 하지요.
예수님이 당신을 포도나무로 비유한 것은 그분에게 달려 있는 우리가 열매를 맺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더러 겉보기에 굵고 여러가지 장식이 되어 있는 가지가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니지요. 예수님은 열매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매를 맺을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 어떻게든 자신들을 꾸밀 생각을 합니다. 마치 자신들을 잘 꾸며두면 열매가 저절로 생기기라고 할 듯이 착각을 하지요.
한번은 돈을 많이 벌면 자선을 하겠다고 나서는 청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설령 그 친구가 돈을 그렇게나 많이 번다 하더라도 올바른 의미의 자선을 하지는 못할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가진 작은 것을 나눌 줄 모르는 사람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나눌 줄 모르게 마련입니다. 설령 나눈다 할지라도 다른 무언가를 얻을 목적으로 나눌 것이 분명합니다. 마치 기업들이 가난한 이들에게 겉꾸민 자선을 베풀고 그것을 온 세상에 선전하는 것과도 비슷하지요.
열매를 맺는 것은 모든 우주의 에너지를 모아서 단숨에 이루어내는 무언가가 아닙니다. 열매는 아주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나눔부터 시작해야 나중에는 큰 나눔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희생부터 시작해야 나중에는 큰 희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복음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의 운명도 나와 있습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면 결국 밖에 던져져 메마르게 되고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서 불에 태우게 됩니다. 별 의미 없이 스쳐지나가는 듯한 표현이지만 사실 이는 심각한 표현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의 운명은 파멸이지요.
그러나 열매를 맺지 않는 사람들은 이를 듣고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올바로 듣지도 않을 뿐더러 이해할 마음도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여전히 열매보다는 세상 안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들에 집착합니다. 재력, 명예, 권력과 같은 것을 추구하고 추구하고 또 추구하지요. 그러다 결국 아무런 열매도 없이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진 운명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십시오. 당신은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당신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습니까? 당신은 영혼들을 돌보고 그들이 하느님 앞에 나아오도록 빛이 되어 주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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