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어좌 앞에 있고,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고 있다. 어좌에 앉아 계신 분께서 그들을 덮는 천막이 되어 주실 것이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해도 그 어떠한 열기도 그들에게 내리쬐지 않을 것이다. 어좌 한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목자처럼 그들을 돌보시고, 생명의 샘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실 것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요한 7,14-17)
묵시록은 희망에 대한 서사시입니다. 물론 전부 실제로 일어날 일들을 적은 것이지만 지금의 지상의 우리들이 이해할 수준으로 적힌 것이지요. 물론 그마저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수두룩하지만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환난을 겪어 낸 사람들’이라는 말은 단순히 큰 재난을 겪은 사람들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진정한 환난을 겪어낸 이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즉 자신들은 큰 선의를 지니고 다른 이들에게 호의를 베푸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악해서 쓰디쓴 고난을 겪은 자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단순히 큰 사고가 나서 희생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큰 일이 없더라도 환난을 겪는 이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곧잘 자기네들 기준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그것을 떠들어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정말 진정한 영웅적인 내면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고 사회적인 이슈가 된 문제에 관심을 갖지요. 이란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별 관심이 없다가도 자기 친척이나 아는 사람이 불의한 일을 당하면 들고 일어서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환난이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불행한 이들이 아닙니다. 참된 환난은 온갖 거짓과 불의 속에서 하느님을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어린양의 피로 자신의 옷을 빤다는 상징은 다시 말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여 자신들의 과오를 깨끗이 씻고 거룩함을 이룬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예수님이 늘 하신 가르침 처럼 자기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진 이들을 말하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어좌 앞’, ‘성전’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들이 하느님에게서 얼마나 가까이 있고 어떠한 곳에 머무르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랑한 분 가장 가까이에 머무르고 또한 가장 거룩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리고 ‘섬긴다’는 표현을 통해서 그들이 하는 주된 활동이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물론 이러한 것들이 지금의 우리로서는 당장 이해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한 활동이 무료하고 따분해 보이기 일쑤이겠지요. 하지만 한창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들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는 채로 단지 곁에 서로 머물러 있다는 것 하나로도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은 ’천막’처럼 그 모두를 덮어 주십니다. 그로 인해서 뜨거운 햇볕을 가리게 되고 그 열기가 그들을 해치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들에게는 세상 안에서 겪던 주림도 목마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인들의 영혼은 세상 음식이나 세상 지위를 갈망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사랑 안에 살아가기를 바랬던 것이지요. 그래서 하느님의 천막 속에 머무르면서 그들은 충분한 사랑을 얻고 지내게 되고 따라서 그 어떤 주림도 목마름도 그들을 엄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해와 열기는 어둠의 세력들의 증오를 말합니다. 사람의 영혼은 증오에 사로잡힐 때에 뜨겁게 타오르지요. 그래서 천막 속에서는 그런 해와 열기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린양’은 그 한 가운데에 머무르시면서 당신이 구해내신 이들을 지극 정성과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약속한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 주시지요. 사실 이 일은 지금 이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미사에 참례하고 예수님의 보호를 청하면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들을 사랑으로 돌보시고 영원을 약속해 주십니다. 다만 저곳에서는 그 약속이 현실로 주어진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눈물을 닦는다’는 표현을 통해서 더는 슬픔이 없을 것을 알게 됩니다. 하느님은 지상에서 수고한 모든 이들의 눈물을 진정으로 닦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 두 눈의 눈물은 손수건으로 닦지만 영혼의 눈물, 영혼의 아픔과 슬픔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 닦아내게 됩니다. ‘사랑, 선의, 진실, 정의, 평화’와 같은 것들 말이지요.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의 그 모든 좋은 것들을 마음껏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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