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聖召)는 ‘거룩한 부르심’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신앙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 또다시 특별한 역할에로 부르심을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사제와 수도자가 되는 이들이지요.
이 부르심은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영역에서 주도되는 것이고 인간이 응답을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부르는데 응답을 하기 싫어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고 또 부르심을 받아야 하는 쪽에서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부르심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이 부르심은 ‘신비’의 영역에 속해 있는 것이고 거룩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사제의 ‘특권’처럼 보이는 것들을 부러워합니다.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 길은 참으로 고상해 보이고 또 편안해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부러워하는 것이지요. 만일 그 길이 십자가의 길이라면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편안하고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서 그 길을 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자신이 부름받은 처지를 끊임없이 무시해야 하지요. 마치 게으른 종처럼 자신이 원래 해야 하는 일을 잊고 주인의 집에서 매일 먹고 마시고 취하면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자신에게 결국 다가올 일을 잊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부르심을 받는 이유는 그에 합당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부르심을 받는 이유는 하느님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명은 당신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것이지요. 사제는 그 고유의 성사 거행과 가르침을 통해서, 또 수도자는 기도와 봉헌의 생활을 통해서 말입니다.
만일 한 사제가 진정으로 성사를 거행하려고 하고 가르침을 전하려고 한다면 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또 자신의 가르침을 확고히 하려면 가르치는 대로 살아야 하기도 합니다. 자신이 지키지도 않는 것을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수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으로 기도를 하고 스스로를 봉헌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온전히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만만찮은 도전이지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성직자와 수도자는 불행이 뒤따릅니다. 지금 당장 세속의 걱정 거리로부터 벗어나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는 있겠지만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결과가 자신을 늘 뒤따르는 것이지요. 하느님에게 충실하지 못한 성소자들은 언제나 일종의 불안을 지니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른 종의 불안,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르는 불안이지요. 그리고 이는 비단 특별한 성소를 받은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성소자’들, 즉 그리스도의 삶으로 초대받은 신앙인들에게 해당되는 일이지요.
모쪼록 거룩한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들에게 그 사랑을 전할 줄 아는 이들이 많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꿈꾸게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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