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모든 선은 오직 하느님에게서부터 비롯합니다. 우리가 선할 수 있는 이유는 하느님을 반영해 내기 때문이지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선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선하심이 아니면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몫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고도 ‘저희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느님 앞에 합당한 자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느님이 우리를 막 대하시는 분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가장 좋은 자리에 앉히고 당신이 나서서 우리의 발을 씻어주실 분이십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약점이 있게 마련입니다. 세상에 그 누구도 완전한 사람은 없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약점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약점을 핑계 삼아서 악을 행하는 사람도 있지요.
여전히 사람들은 이를 올바로 구분하지 못합니다. 상대가 하는 일의 근본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알지 못하지요. 오히려 그가 나와 코드가 맞는가 아닌가를 먼저 살핍니다. 하지만 그 코드라는 것이 진실과 정의에 바탕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의 기준점을 바탕으로 한 것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지요.
그러니 세상 사람들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의 모든 희망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게 모든 것을 걸고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세상 안에서 수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작이고 그것이 마침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인정을 요구하는 사람은 점점 세상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것을 추구하게 되고 결국 길을 엇나가게 됩니다.
이방인의 나라에서 선교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도 쉽지 않지만, 이미 이 세상은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힘들게 만들고 있고, 더욱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힘겹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오늘날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이미 태초부터 의인들을 괴롭히던 문제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모든 노력은 때가 되면 꽃이 피게 될 것입니다. 비록 모든 선은 하느님의 몫이지만 그것을 끌어당기고 주변에 나누어 주는 것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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