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신비입니다. 하지만 그 신비는 꼭꼭 숨기려고 신비가 아니라 아직은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신비입니다. 마치 대학생이 쓰는 교재를 들고 있는 어린이와 같지요. 하지만 그 어린이는 자라게 되고 나중에는 대학생이 되어서 그 교재를 읽을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그러고 나면 신비는 더는 신비가 아닌 것이 됩니다.
교회는 신앙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꼭꼭 숨기려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이 신앙 안에서 충분히 자라서 얼른 그것을 알아내고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도와주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에 신앙의 신비가 그 신비를 지닌 이들(혹은 심지어 지니지도 못한 이들)의 손에 꼭꼭 숨겨져서 그것을 알고 싶어하는 이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이는 모습이 관찰될 때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교회는 신비를 잘 간직하고 올바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그 직분 자체를 무시하고 까내리려고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우리는 교회의 교도권을 존중하고 거기에서부터 생명의 말씀의 풀이가 다가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개개인에게서 일어납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이를 통제하려는 수단으로 쓰려는 욕구에 사로잡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가르치시지 않은 가르침을 하느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다른 이들을 혹하게 만들고 다른 이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수단으로 쓰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인 면들을 짚어 보자면, 신앙 생활을 인도해야 하는 이가 그것을 잘 모르는 초보자에게 은근히 으스대고 싶은 마음으로 신앙 생활에 대한 지시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의 본질은 그 대상자가 하느님을 사랑하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것인데 무언가 으스대고 싶은 사람이 가르치는 신앙생활은 굉장히 어렵고 딱딱하고 초보자가 쉽게 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신앙이라는 것이 그토록 어렵고 힘든데 그 선배는 열심히 하는 걸 보고 그 선배를 존경하게 하려는 것이지요.
신앙 생활이 30년이 된 사람에게 기도문 외우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하지만 금방 신앙에 다가선 사람에게는 힘든 도전이 되지요. 하지만 그 초보자도 30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같은 생활을 유지하면 그런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자랑해야 하는 것, 드러내어야 하는 것은 신앙의 빛과 소금이지 오랜 시간 훈련해서 쌓이는 기술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많은 경우에 본질을 왜곡하고 엉뚱한 것을 신앙생활의 전부인 양 내세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33일의 기도와 같은 것, 9일기도와 같은 것, 특정한 종류의 신심활동(레지오, 성령기도회 등등)은 본질을 돕기 위한 훌륭한 수단들이지만 그것들이 본질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오히려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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