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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사와 자비



우리가 지닌 성사는 고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귀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물을 내놓게 됩니다. 고해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지만 그릇되이 이용하면 ‘모고해’라는 것이 되고 더 큰 죄가 되어 버립니다. 성체성사도 마찬가지로 올바로 참례하고 우리의 마음을 전적으로 하느님에게 돌리고 정진해 나아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심지어 중요한 내면의 거스름을 지니고도 모시게 되면 ‘모령성체’가 되고 맙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를 당신의 품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사 밖에 머물러 있는 이들에게도 마음을 써야 합니다. 세례 성사를 아직 받지 않았다고 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너무 성급한 일입니다. 그 누구도 그들에게 하느님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고 바로 그 가르쳐야 하는 주체가 그들을 비난하려고 드는 신앙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님은 알지만 가톨릭 교회의 풍성한 신앙 유산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이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따뜻한 시선을 지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그들이 하느님을 알도록 더 잘 도와줄 수 있고, 또 우리 스스로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사가 아니라 자비다’하신 말씀을 올바로 알아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사랑하시고 당신의 자비를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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